비가 많이 쏟아졌다.
여자양궁대표팀이 연습경기를 위해 원정 훈련을 한 16일 한국체육대 양궁장.
장맛비 속에서 윤미진(21)은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심한 목감기에 걸린 지 1주일째. 그는 도핑에 걸릴까봐 제대로 약도 못 먹고 있다며 콜록거렸다.
결국 그는 오후 훈련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연습벌레로 소문난 그가 훈련에 빠진 건 드문 일. 여자대표팀 서오석 감독은 매정하게 아테네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감기 걸린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윤미진은 감기 걸린 거 절대로 쓰면 안 된다며 기자의 펜을 빼앗았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아시면서 그러세요라고 답한다. 주위사람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심산이다.
21세면 아직 어린 나이. 하지만 그에게 거는 주위의 기대는 엄청나다. 감기도 마음대로 걸리면 안 되는 귀하신 몸. 그만큼 부담스럽다.
4년 전 시드니 올림픽 땐 정말 멋모르고 활을 쏴 금메달을 땄죠. 그런데 지금은 뭘 좀 알고 올림픽에 나가게 되니까 더욱 힘드네요.
윤미진에겐 거의 경쟁상대가 없다.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지난해 뉴욕 세계선수권대회와 아테네 프레올림픽에서 내리 개인, 단체전 2관왕을 차지했다. 명실상부한 세계최강.
그나마 경쟁이 될 만한 중국이나 이탈리아 선수들은 아직 한 수 아래고 팀 동료인 박성현(전북도청)이 금메달을 다툴 만한 선수다.
그는 상대가 강하면 따라서 강해지고 약하면 덩달아 약해지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평가한다. 그래서 의외로 약한 선수한테 덜미를 잡히는 경우가 있단다.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지난해 뉴욕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첫 판 64강전에서 죽다가 살아났다.
국내 양궁 역사상 한 선수가 올림픽에서 개인, 단체전 2관왕을 두 대회 연속 제패한 적은 없었다.
즐겁게 살자는 인생의 좌우명을 갖고 있는 윤미진. 그는 올림픽 2관왕 2연패의 목표를 달성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학(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들어간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미팅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