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해 다오, 그리스의 피가 얼었다, 성화는 꺼지는가. 그리스의 육상스타 콘스탄티노스 켄테리스와 관련된 그리스 신문 제목들이다. 4년 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안겨준 올림픽 영웅, 고향 레스보스의 섬마을에 켄테리스 거리란 이름을 선사했던 이 나라의 가장 인기 있는 남자가 순식간에 공공()의 적 1호가 됐다. 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이리라고 기대됐던 그였다. 그런데 도핑검사장에 나타나는 대신 개막식 직전 여자친구이자 훈련 파트너인 에카테리나 타노우와 함께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를 입은 것이다. 도핑테스트를 피해 자해사고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면서 가장 깨끗한 올림픽을 추구해 온 개최국 그리스의 체면까지 손상됐다.
도핑은 선수가 경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 흥분제 호르몬제 등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약물을 사용하고도 세계 반()도핑기구(WADA)가 2400회나 실시하는 검사를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왜 선수들은 도핑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해답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의 올림픽 모토에 있다. 이 자체가 인간한계에 대한 도전이다. 도핑은 육상과 수영에 집중된다. 축구 농구 등 기술과 팀워크가 중시되는 경기에 비해 육체적 능력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2등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치열한 경쟁에도 원인이 있다. 미국 시카고의 의사 밥 골드먼이 미국 육상선수 198명에게 도핑을 해서 5년간 우승하고 WADA에 걸리지 않는 대신 약물 후유증으로 죽는다면 어쩌겠느냐고 물었더니 절반이 그래도 도핑하겠다고 답했다는 조사가 있다.
도핑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더 나은 경기를 추구하는 것 역시 스포츠정신이다. 약물의 해악도 실은 담배나 알코올 정도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비아그라 먹는다고 사랑이 훼손되는 게 아니듯, 최상의 상태로 경기하고 관전의 기쁨을 주는 일을 무조건 금지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은 룰이다. 도핑 올림픽이 따로 생겨나지 않는 한, 약물 없이 경기하는 올림픽 정신은 준수돼야 옳다.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