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남자 73kg급 금메달리스트 이원희(한국마사회)는 보성고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시험시간에 일찍 답안지를 내고 잠을 자던 중 한판승 꿈을 꾸다가 흥분한 나머지 책상을 걷어차 조용하던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든 것. 얼마나 한판승 생각이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그런 이원희의 별명도 바로 한판승의 사나이.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를 포함해 국내외 8개 대회를 잇달아 휩쓸며 48연승을 질주할 때 한판승은 무려 43차례.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우승할 때까지 5판 가운데 4판을 내리 한판승으로 장식했다.
이원희의 한판승 비결은 뭘까.
우선 변화무쌍한 기술이 가장 큰 장점. 윤동식 본보 해설위원은 유도는 크게 틀어잡기와 가슴 깃을 잡는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뉘는데 원희는 둘 다 제대로 구사할 줄 안다고 말했다.
이원희는 오른손잡이지만 오른쪽 기술은 물론이고 빗당겨치기 같은 반대 기술도 뛰어나며 허리기술과 발기술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게다가 순발력과 발놀림까지 빨라 설사 기술이 잘 안 들어가더라도 바로 다른 연결동작을 펼쳐 상대에게 손쓸 틈을 주지 않고 제압한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 상대 중심을 흐트러뜨리는 데도 명수. 결승전에서 러시아의 비탈리 마카로프에게 한판승을 거둘 때도 업어치기에 이은 안뒤축걸기의 연결동작이었다. 타고난 유연성도 장점. 상대의 기술에 걸려도 좀처럼 큰 점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강인한 승부근성과 타고난 체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지고는 못 참는 이원희는 어린 나이였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년 내내 교내는 물론이고 인근 학교를 통틀어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렸다. 힘이 장사인 이원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이상태씨가 한약을 달이고 남은 찌꺼기에 구더기가 생기면 그것을 볶아서 먹일 정도로 지극 정성을 다한 덕분에 혹독하기로 유명한 태릉선수촌 훈련에서도 좀처럼 지치는 법이 없었다.
권성세 대표팀 감독은 원희는 훈련하다 잘 안되면 눈물까지 쏟을 정도로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지능지수가 148에 이르는 영리한 두뇌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도 강점. 준결승 상대 빅토르 비볼(몰도바)을 맞아 경기 시작 1분24초 만에 불의의 옆굴리기 공격을 당해 절반을 내줬으나 흔들리지 않고 곧바로 한판승을 낚은 게 좋은 예.
김의환 용인대 교수는 경기 불안감을 스스로 극복해 자신감 넘치는 경기를 펼친 것도 한판이 많은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원희가 한판승만 노리는 것은 아니다. 이원희는 한판승으로 빨리 끝내고 멋있게 넘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거기에 매달리다 보면 경기가 말릴 수 있어 늘 신중한 자세를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