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가 석 달 전 프랑스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발표를 하지 않아 확인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헛소문은 아닌 것 같다.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 온 사람의 죽음을 두고 외부에서 갖가지 보도가 나오는데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북한은 역시 비밀이 많은 나라다. 한창 나이인 51세에 별세한 충격이 커서 그럴까. 고영희가 프랑스에서 사망한 것도 궁금한 대목이다.
실마리는 있다. 고영희에 앞서 인민무력부장이던 오진우가 1994년 프랑스에서 폐암 치료를 받았다. 그는 혁명 1세대로 김일성 주석에 이어 권력서열 2위에 오른 거물이었다. 그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는지 북한은 프랑스행을 은밀하게 추진했다. 프랑스도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한국특파원들의 끈질긴 취재로 오진우의 방불() 진료는 시작하는 날 전 세계에 알려졌다. 라에네크 병원에서 1차 진료를 마친 오진우가 승용차에 오르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잡혔다.
북한 고위층은 왜 프랑스 병원을 찾을까. 우선 프랑스 의술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라에네크 병원은 세계적인 폐암 전문병원이다. 고영희가 어느 병원을 찾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만났을 것이다. 두 번째는 철저한 비밀 유지. 오진우의 경우에는 실패했으나 이번에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마지막은 비우호적 국가의 고위 인사 치료를 허용하는 프랑스의 관대한 정책이다. 걸프전 이후 타리크 아지즈 당시 이라크 부총리를 비밀리에 입국시켜 진료한 사실이 드러나자 프랑스 정부는 인도주의에 따른 조치였다고 해명했고 국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고영희의 사망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북한 지배층의 향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장남인 정남을 낳은 성혜림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묻혔다. 그러나 고영희의 시신은 평양으로 운구돼 김 위원장의 가족묘가 있는 만경대에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고영희 소생인 정철이 후계자에 가까워졌다는 추측이 나온다. 후계구도에 대한 고민 때문에 북한이 고영희의 죽음을 숨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호기심 이상의 의미를 지닌 관측 대상이다.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