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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정착지원 시설 하나원 나온후

Posted September. 20, 20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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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돈 빌릴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드세요

10일 경기도 안성의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졸업식(59기)을 끝으로 한국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탈북자 152명에게 하나원 관계자는 돈 빌리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정부가 일시불로 지급하는 초기 정착지원금이 임대아파트 임대료보다 적기 때문이다. 탈북자는 부족분을 마련해야만 잠잘 곳을 마련할 수 있는 것.

한국에 아무 연고가 없는 유진씨(45가명)는 부족분 수십만원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다른 졸업생들을 떠나보낸 뒤 홀로 하나원에 남았다. 벌써 열흘째.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될 지는 알 수 없다. 유씨처럼 돈을 구하지 못했던 졸업동기생 3명은 아는 사람집에 거처하다 최근에야 돈을 구해 집을 장만했다.

자본주의 벽에 부닥친 탈북자들=하나원을 졸업해도 사정은 나아지진 않는다. 다른 탈북자에게 100여만원을 빌려 서울 Y구에 겨우 정착한 최모씨(32올7월 입국). 그는 초기 정착금을 아파트 임대에 모두 쏟아붓는 바람에 라면 사먹을 돈마저 없다고 하소연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해보겠다는 생각에 13곳에 전화를 해봤지만 북한의 생소한 억양 때문에 매번 거절당했다고 한다.

갓 정착한 탈북자들은 거래실적을 따지는 은행에서 대출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모씨(42올7월 입국)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파트 인근의 재활용품 수거함에서 고장난 냉장고를 가져다 수리한 것. 이씨는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거지생활을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대량 입국사태가 거듭되면서 탈북자 중에는 이들처럼 사회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탈법 부추기는 지원체제=대량 탈북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교육내용도 과거 소수가 입국할 때와 변화가 없다. 탈북자들은 하나원 교육과정에서 홈쇼핑 마트등 외래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사회적응에 필요한 기술교육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탈북자들은 편법을 쓰고 있다. 정착금이 지급되는 통장을 고리대금업자에게 맡기고 그 액수의 절반을 할인받아 사용하는 것. 또 생존 문제에 부닥친 탈북자 중 일부는 범죄의 유혹까지 받고 있다. 하나원을 10일 전 나온 이씨는 일자리도 없고 저녁도 못먹는 상황에선 훔쳐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정부의 딜레마=정부도 딜레마에 빠졌다. 일시불로 지급하자니 정착지원금이 브로커의 손에 들어가 또다른 대량 탈북을 부추기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초기 정착지원금을 낮추자니 탈북자들이 초기 자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

정부는 탈북자 주무부처를 90년대 초반까지 남북이 체제경쟁을 벌일 때는 국가보훈처로, 식량난에 의한 집단 탈북이 시작된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보건복지부로 삼았다. 하지만 탈북자 1만명 시대를 맞으면서 탈북자 문제를 사회통합의 시험대로 인식, 주무부처를 통일부로 옮겼다.

이에 따라 탈북자 정책기조도 바뀌었다. 금전적 지원보다는 자립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 정부 관계자는 탈북자에겐 돈을 주는 것보다는 자립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론은 바뀌었어도 각론이 바뀌지 않아 탈북자들의 어려움은 당분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하태원 zsh75@donga.com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