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스산한 초겨울 움츠린 달동네

Posted October. 28, 2004 23:04,   

ENGLISH

기름값 때문에 큰일이야.

26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응암3동 주택가 최모 할머니(78)의 낡은 단칸방.

최 할머니는 인근 자선봉사단체인 박애재가노인복지원의 임미현 사회복지사(29여)를 만나자마자 연방 눈물을 닦아냈다.

최 할머니는 청각장애로 말하는 것도 불편한 독거노인. 출가한 세 딸이 돌보지 않은 지 4년이 넘었지만 부양가족으로 등록된 딸들이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도 오르지 못했다.

임 복지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쌈짓돈과 복지시설에서 지급하는 월 1만원이 할머니의 유일한 생활비라며 기름 살 돈이 없어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디는데 그것도 전기세가 부담돼 자주 쓰질 않으신다며 안타까워했다.

독거노인들은 온갖 병을 안고 살기 때문에 추위는 치명적인 적. 그러나 대부분 허름한 기름보일러 방에 살기 때문에 돈 걱정에 억지로 추위를 견딘다.

임 복지사에 따르면 복지관에서 돌보는 90명의 독거노인들은 한여름만 지나가면 추위에 떨기 시작하지만 지금도 보일러를 때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가정봉사원으로 일하는 김해숙씨(44여)는 독거노인에게 매월 15만17만원씩 드는 연료비는 한 달 식비보다 큰 돈이라면서 겨울이 오면 유독 외로움을 토로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5동 산동네 철거촌.

도시에선 보기 힘든 감나무와 호박덩굴이 풍성해 보였지만 햇빛에 번득이는 철조망 사이로 부서진 건물들이 을씨년스러웠다.

64세대 120여명의 주민이 그 흔한 이주비 한 푼 못 받고 3040년간 살아온 터전을 잃은 채 천막과 몇 안 남은 이웃집에서 기거한 지 벌써 석 달째. 무너진 집에서 전기와 수도를 끌어와 쓰고 있지만 그마저도 언제 끊길지 몰라 불안하다.

장옥순 할머니(71)는 철거반이 항상 철거를 노리고 있어 젊은 사람들도 일을 못 나간 지 한참 됐다며 몇몇 봉사단체와 사회복지사가 도와주지만 대부분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느라 빚만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기초생활수급대상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철거민을 위해 동사무소 이명재 사회복지사(45)가 긴급구호를 신청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이 복지사는 사회복지체계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현장의 실상을 융통성 있게 담아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인근에 있는 S임대아파트 서민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501호에 사는 박옥순씨(41여)는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지만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면서 8000만원이 넘는 빚만 쌓여 결국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전락했다.

이 복지사는 가정경제의 붕괴로 가족을 버리거나 소규모 자영업을 하다 망해 극빈층으로 몰락한 결손가정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조이영 정양환 lycho@donga.com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