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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서 CEO까지

Posted November. 10, 200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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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말수가 적어 인터뷰가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러나 한번 열린 말문은 1시간이 넘도록 닫힐 줄 몰랐다. 30년 넘는 야구감독 인생. 할 말은 많고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감독에서 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삼성 라이온즈 김응룡 신임사장(63). 10일 경북 경산시 삼성볼파크에서 만난 그는 어눌하지만 솔직 담백하게 지난 세월을 끄집어냈다.

나는야 복장()

1972년 한일은행 감독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32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다. 장수의 비결이 궁금했다. 내가 인덕이 있어요. 은행장, 사장, 구단주 등 좋은 분들만 만났어. 선수 덕을 봐야 우승도 하는 거야. 1981년 한일은행 감독 시절 38만원이던 월급은 83년 해태 감독에 부임하면서 연봉 2400만원으로 껑충 뛰었고 올 시즌 삼성 감독으로 2억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다 행운이라는 것.

만능스포츠맨

김 사장은 처음엔 축구를 했다. 부산 개성중 1학년 때 축구장에서 날렸어. 학급 대항 야구대회 선수로 뽑혀 야구와 인연을 맺은 거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열심히 했어. 1960년대 서울 명동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덩치가 컸다는 김 사장은 72년 야구선수 은퇴 후 20년 가까이 테니스를 쳤다. 금융단 테니스대회 대표로 나갈 만큼 수준급 실력. 10년 전부터 무릎이 신통치 않아 산을 타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골프. 야구단 사장 되면 골프를 잘 쳐야 한다던데. 한 1년만 열심히 하면 문제없어. 현재 스코어는 90대 중반.

소중한 가족

평남 평원에서 태어난 김 사장은 열 살 때 14후퇴를 맞아 아버지 손을 잡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흘만 피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집을 떠났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어머니, 누이, 형, 여동생 3명과 생이별을 했다는 대목에선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신청했는데 안됐고 사기도 많이 당했지.

골치 아픈 일

김 사장은 다음 달부터는 구단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시간 맞춰 회사에 가는 건 80년대 초반 한일은행 시절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 넥타이만 매면 속이 메슥거려. 꼭 매야 하나. 그는 연설과 노래도 싫어한다. 주례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워낙 말하기가 싫어. 게다가 내가 음치야. 술 마시다가 나한테 노래시키면 한 대 얻어맞지. 그런데도 프로필 애창곡란에는 목포의 눈물이라고 쓴다. 해태 시절 관중석에서 그 노래가 하도 많이 나와 듣다 보니.

새로운 인생

야구감독을 안하면 마음이 좀 편할 줄 알았다. 발 뻗고 푹 자려고 했는데 잠이 더 안 오더라고. 앞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 삼성 라이온즈를 뛰어넘어 야구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코칭스태프 조각, 선수 보강 등은 선동렬 감독에게 100% 다 맡길 거야. 난 좀 더 큰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인터뷰 동안 김 사장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고 축전도 전해져 왔다. 야구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대부분. 올 시즌 프로야구 최우수선수인 삼성 투수 배영수는 저도 은퇴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새 꿈을 만들어 주셨다고 말했다. 사장 김응룡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야구계 전체의 경사였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