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모 중앙부처의 혁신사례 발표회장에서 이뤄진 단막극.
혁신담당관실 직원들이 복지부동 무관심 냉소라고 적힌 문구를 목에 걸고 혁신 이전의 공무원 역할을 했다.
이들이 민원인의 전화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등 잘못된 공무원 행태를 보이자, 곧바로 거지가 등장해 이들을 향해 나보다 상거지 떼 같다. 국민 세금을 얻어 쓰는 주제에라며 조롱한다.
결국 공무원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공무원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혁신단막극은 끝났다.
이를 지켜본 한 공무원은 아무리 연극이지만 좀 심했다며 씁쓸해 했다. 공무원 사회가 개혁의 대상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올해 들어 노무현() 대통령이 핵심 개혁과제로 정부혁신을 자주 강조하면서 공무원 사회에 혁신 열풍이 불고 있다.
혁신운동으로 건설적인 업무개선 아이디어가 제시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크지만 때로는 혁신 지상주의가 나타나면서 상당수 공무원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무원사회도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지만 사상개조에 가까운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혁신 노이로제에 걸린 공무원들=일부 부처의 경우 개인별, 부서별로 혁신 점수를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업무보다는 혁신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 부처의 A 과장은 학습동아리 등을 운영하거나 참여하면 좋은 혁신 점수를 받기 때문에 때 아닌 동호회 모임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혁신 관련 교육을 받은 공무원은 혁신이라는 말을 너무 강조해 마치 사상개조를 강요받은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잇따르는 공직사회 실험=정부는 올해 1월 중앙부처 국장급 인사를 맞바꾸는 국장급 인사교류 제도를 시행한데 이어 13급(실국장) 공무원들의 직급을 없애고 이들을 범정부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내년 중 확정할 방침이다.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새로운 제도의 실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실제로 국장급 인사교류 제도의 경우 해당 국장들의 경험의 폭을 넓혀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제도시행 1년째인 내년 1월을 앞두고 벌써부터 각 부처에서는 이들의 복귀, 추가파견 등의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진 것도 부처 공무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정부 부처의 B 과장은 위원회가 정책을 주도하다보니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친 정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세대 나태준(행정학) 교수는 일방적으로 위에서 지시하는 개혁은 공무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