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1974년 한국 정부에 국교 수립 문제를 논의하자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또 한국 정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숨진 한국인의 유골을 일본 땅에 매장하자는 제안을 일본 측에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 공개된 관련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중국의 한중 국교 수립 타진=1974년 10월 23일 당시 한국 외무부 동북아2과장과 주한 호주대사관의 고긴 1등 서기관 간의 면담록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중국 외교부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는 스퍼 씨라는 외교소식통을 통해 호주 측에 메시지를 전달했고, 호주 측이 이를 한국 측에 전했다.
고긴 서기관은 중국 측 메시지는 한국이 궁극적으로 대만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이라는 조건으로만 (한중) 상호간 비공식적 회담이 시작될 수 있고, 상호관계가 수립될 시에는 한국이 대만에 연락대표부를 두는 것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동북아2과장은 호주가 중국과 수교 교섭을 할 때 중국 측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알려 달라고 요청했고, 고긴 서기관은 중국은 수교 교섭에서 대만 문제만을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이는 냉전 시대인 1970년대에도 중국 측이 한국과의 수교 문제에서 북한 변수를 중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중 수교는 이로부터 18년 뒤인 1992년에야 이뤄졌다.
한국인 무연고 유골의 일본 매장 요청=재일본 한국인 유골 봉환 1974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66년 박정희() 정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징용 또는 징병됐다가 숨진 한국인 무연고 유골을 일본 땅에 항구적으로 매장하자고 일본 측에 제의했다.
정부는 1966년 이전까지는 한국인 유골의 일괄 봉환 방침을 유지했으나 유골의 남북한 출신 여부를 파악하는 문제가 봉환 교섭에 장애물로 등장하자 무연고 유골의 일본 땅 매장이란 차선책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일본 국민 감정상 곤란하고 유골의 연고자가 뒤늦게 나타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거부한 뒤 한국 정부가 남북한 출신을 불문하고 유골을 일괄 인수한 뒤 한국에 매장하는 것이 어떠냐고 역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