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의 테스트 마켓(Test Market)으로 떠오르고 있다. 휴대전화나 MP3플레이어 같은 정보기술(IT) 제품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 소비자들의 휴대전화 교체 주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평균 18개월이고, 젊은이들은 1년 미만이다.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멀쩡하게 잘 터져도 바꾸지 않고는 못 배긴다. 미국에서조차 휴대전화에 관한 한 한국이 최첨단 선진국이고 우리는 제3세계 국가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명차() 화장품 위스키 등 고급 사치품도 한국 시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삼는다. 지난해 도요타가 렉서스 뉴ES330을 세계 최초로 한국 시장에 선보였고, BAT도 한국 시장을 통해 최고급 프리미엄 담배 던힐 톱리프의 출시를 전 세계에 알렸다. 최근에는 1병(700mL)에 170만 원이나 하는 최고급 위스키 로얄 살루트 38년이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출시됐다. 술 사치로 치면 외국의 부호()도 한국 중산층에 미치지 못한다.
할리우드 영화도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한다. 연간 1억2000만 명의 관객이 드는 한국에서의 반응이 세계 흥행의 선행지표인 셈이다. 지난해 영화 오페라의 유령이 미국보다 한 달여 앞서 한국에서 개봉됐고,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액션영화 콘스탄틴도 미국보다 열흘 먼저 국내에서 선보였다. 자국 영화의 영화 시장 점유율을 50%로 끌어올린 한국 영화 팬들의 까다로운 안목이 할리우드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와 신제품이 출시되기가 무섭게 제품의 장단점을 족집게처럼 짚어 내 인터넷에 올리는 소비자들의 열정적 태도를 꼽는다. 또 한국인의 민족적 결함으로 지적돼 온 냄비 근성과 빨리빨리가 가져 온 또 다른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유럽 시장에서는 몇 년에 걸쳐 일어날 일이 한국 시장에서는 36개월 안에 일어난다. 화가 곧 복이 되듯, 결함 또한 활용하기에 따라선 장점이 될 수 있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