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작된 매운 음식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음식점마다 매운맛을 더한 새로운 메뉴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닭고기를 맵게 요리한 불닭은 여전히 최고의 인기. 패스트푸드업계도 매운 햄버거와 치킨 등 신상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매운맛은 더욱 맵게. 서울 종로구 무교동 일대 이른바 낙지골목에는 더 매운 낙지요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너무 매운 탓에 어떤 사람은 이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냐고까지 말하지만 마니아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매운 음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종종 뒤탈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먹고 난 뒤 속이 아리고 뒤틀려 며칠 동안 후유증으로 고생한다. 밤새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도 한다.
걱정은 또 있다. 매운 요리를 오래 먹으면 위장과 간이 손상된다던데. 이 말이 사실일까.
뒤틀리는 장 위염 궤양 걸린다는 말은 근거없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혀에 있는 미각()세포는 달고 짜고 시고 쓴, 4가지의 맛을 감지한다. 매운맛은 느끼지 못한다. 매운맛은 아픔을 느끼는 통각()세포에서 담당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뇌는 매운맛을 맛이 아닌, 통증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다른 맛은 괜찮은데 유독 매운 음식에 대해서 장()이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각세포가 통증 신호를 대뇌에 보내면 뇌는 빨리 통증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명령을 받은 위장과 대장은 격렬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그래서 속이 아리고 뒤틀리는 것이다.
매운맛의 원인인 고추의 캡사이신, 마늘의 알리신 성분은 2, 3일이면 체내에서 모두 사라진다. 통증의 원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위와 대장의 속 쓰림도 같이 해소된다. 이들 성분이 체내에 남아 문제를 일으키는 법은 없다.
매운 음식이 염증 또는 궤양의 원인이 된다는 보고는 아직까지 없다. 의사들도 무쇠를 녹인다는 위산에도 끄떡없는 위 점막이 매운 성분 때문에 손상될 리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매운 음식을 많이 먹어 위염과 위암에 걸린다는 말은 틀리다. 오히려 캡사이신은 염증을 가라앉히고 알리신은 살균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람은 조심하라 위 대장 약한사람 매운 음식 피해야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매운 음식이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평소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등 위와 대장이 약한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 이 경우 매운 음식을 먹으면 위산이 과도하게 분비될 수 있다. 매운 음식이 위장병의 직접 원인은 아니지만 위험인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위장 기능이 떨어진 사람이 매운 요리를 먹은 직후 급성 위염으로 응급실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즐기면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 더 큰 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고혈압 환자 역시 매운 요리를 자제하는 게 좋다. 매운맛 자체가 혈압을 높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대부분 매운 요리가 맛을 내기 위해 소금과 설탕을 많이 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혈압을 높인다.
매운맛 없애는 법 따뜻한 밥이나 빵 물고 있다가 삼키면 효과
매운 청양고추를 씹었을 때 사람들은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매운맛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뇌는 매운맛을 통증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맛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통증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럴 때는 따뜻한 밥이나 빵을 입에 잠시 물고 있다가 씹어 삼키는 게 좋다. 따뜻한 감각이 통증을 줄이고 탄수화물이 캡사이신 성분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우유나 요구르트를 마시는 것도 괜찮다. 여기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역시 캡사이신을 분해한다.
(도움말=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