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또 한걸음.
대원들은 마구 소리를 질렀다. 막내 정찬일(25) 대원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북위 89도 59.997분, 59.998분. 드디어 북위 90도 00.000분.
정신이 없었어요. 북극에 한발 한발 다가서면서 다리가 마구 떨렸고요. 인공위성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에 북극이 찍히는 순간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1일 오전 4시 45분(그리니치 표준시 4월 30일 19시 45분). 박영석(42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 탐험대장과 홍성택(39대한논리속독), 오희준(35영천산악회), 정찬일(2005년 용인대 졸업) 대원은 그렇게 북극점에 섰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대원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얼음이 부서져라 쿵쿵 뛰었다. 무시무시한 추위 속에서 54일간 목숨을 걸고 걸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현지 기온은 영하 22도, 대한민국 원정대의 북극점 입성을 축하하듯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원정기간 내내 사람을 날려버릴 듯 불어댔던 초속 14m 이상의 블리자드도, 삐죽삐죽 솟아올라 100kg이 넘는 썰매를 안간힘을 다해 끌어올려야 했던 난빙도, 순식간에 대원들을 집어삼키던 시커먼 바닷물이 그대로 드러난 리드도 정작 북극점에는 없었다.
그러나 입성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세드나(Sedna에스키모 설화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의 방해는 거셌다. 강한 서풍으로 얼음판이 움직이는 바람에 한참 동쪽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대원들은 기를 쓰고 북극점을 향해 걸었다. 서두르다 홍 대원이 리드에 빠졌지만 원정대는 3시간 동안 텐트를 치고 옷을 말리자마자 바로 운행을 재개했다. 기나긴 원정에 체력은 바닥났지만 정신력으로 걸었다.
54일간의 원정기간 중 가장 큰 고비는 북위 86도와 87도 사이. 85도를 출발한 지 8일 만에 86도를 돌파했지만 이 구간을 넘는 데는 12일이 걸렸다. 중간에 한차례 87도 지점에 도착해 텐트를 쳤는데 밤새 얼음판이 10km가량 뒤로 밀려 다시 넘은 적도 있었다.
날씨가 풀려 얼음이 녹으면 북극점 원정을 포기해야 할 판. 2년 전 북극 원정 실패의 악몽이 대원들을 괴롭혔다.
속도를 높이려면 짐을 줄여야 했다. 결국 원정대는 남은 식량의 절반과 연료를 3분의 1이나 버리고 썰매를 가볍게 만드는 모험을 강행했다. 이 바람에 대원들은 연료를 아끼느라 텐트 안에서도 추위에 떨면서 하루 1인당 200g의 건조식량으로 연명했다.
대원들의 몸 상태는 지금 최악이다. 얼굴과 손발 동상은 기본. 박 대장은 무릎, 홍 대원은 발목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 원정대에 남은 식량은 이틀 치뿐.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면 꼼짝없이 굶어야 할 판이다.
레졸루트 베이스캠프에는 이날 박 대장의 부인 홍경희(42) 씨와 차남 성민(10) 군, 박 대장의 산행 친구인 허영만(58) 화백이 도착해 원정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