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용 주물 제조업체인 아주금속은 연 4.9%의 금리에 3년 뒤 원금을 갚는 조건으로 300억 원 규모의 무보증 회사채를 지난달 말 발행했다.
신용평가회사가 이 회사채에 매긴 신용등급은 BBB0. 당시 BBB0급 채권의 공식 금리는 연 6.59%였지만 아주금속은 이보다 1.69%포인트 낮은 금리에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이 돈으로 올해 4월 22일 수협에서 연 7.5%로 빌린 200억 원을 깨끗이 갚아버렸다. 연간 5억 원 이상을 아낄 수 있게 된 셈이다.
신용만 웬만하다면 기업들이 큰소리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복 터진 기업들
농기계를 만드는 국제종합기계는 지난달 150억 원어치의 BBB 등급 회사채를 발행했다. 금리는 증권업협회 고시 금리(연 8.21%)보다 1.80%포인트 낮은 연 6.41%.
이 회사는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3년 전 연 11.85%로 발행했던 회사채를 모두 되사들였다.
국제종합기계 재무팀 관계자는 요즘 같은 저금리 상황은 은행 대출은 물론 과거 고금리 회사채를 차환()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최근 1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연 4.23%의 금리에 발행, 2002년 발행했던 연 9.04%의 고금리 회사채를 되사들이기로 했다.
이 회사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유가증권발행실적 보고서에서 금융비용을 줄이기 위해 금리 추이를 분석하다 최근의 금리 하락세가 유리한 조건이라고 결론지어 채권을 미리 발행했다고 적어 넣었다.
한 시중은행의 기업금융 담당부장은 요즘은 빌린 돈을 갚겠다는 기업에 제발 조금만 더 써 달라, 일부만 갚으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하는 게 일과라고 털어놓았다.
저금리에 회사채 인기 폭발개인들도 입질
회사채 금리가 하락(채권 값 상승)한 것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또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수요가 만성 초과 상태가 된 근본 원인은 저금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고금리 자금을 유치했던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 등이 돈을 굴릴 곳을 찾아 채권시장으로 몰려왔고 연 3% 중반의 예금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개인들도 회사채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
동부증권 채권금융팀 한상현() 이사는 2, 3년 전부터 몇몇 중소형 증권사가 회사채 창구판매를 시작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며 위험하지만 금리가 높은 2류 회사채가 인기라고 전했다.
회사채 창구판매란 예컨대 증권사가 연 8%에 회사채를 도매로 사들여 적은 금액으로 쪼갠 뒤 연 7%에 팔아 마진을 챙기는 방법. 이런 증권사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채 창구판매 시장의 규모는 최근 약 10조 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작년 초 연 10%를 웃돌았던 3년 만기 BBB 등급(투자적격 등급의 하한선) 회사채의 공식금리는 최근 8%대 초반까지 떨어졌고 그중 우량 기업의 회사채는 공식금리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금리가 형성된다.
한 이사는 저금리 여파로 고수익-고위험 시장이 형성된 것이라며 기업의 본질가치에 비해 채권 값이 과도하게 뛰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만 기업들에는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고 수요자들에겐 자금운용수단을 제공하는 등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단기 기업어음은 감소세
반면 주로 석 달 만기인 기업어음(CP) 시장은 파리를 날리고 있다. 저금리로 장기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지자 기업들이 굳이 CP를 발행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증권사 및 종금사를 통해 발행된 CP 중 상환분을 제외한 순 발행금액은 5000억 원.
여기에는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매입자금(4000억 원)과 SH공사(옛 서울도시개발공사)의 청계천 복원 관련 토지보상금(3000억 원) 등 공기업의 CP 발행금액이 포함돼 있어 일반기업은 CP 발행보다 상환한 금액이 훨씬 많았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이 단기 채무를 장기 채무로 바꾸는 추세인 데다 CP를 발행하려다가도 요즘 같은 상황에서 CP를 쓰면 자금사정이 나빠진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까 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02년 248건이었던 기업어음 평가건수는 지난해 210건으로 감소했다. 올해는 6월 8일까지 75건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