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사설] 국가기관 도청 이번에는 뿌리 뽑자

[사설] 국가기관 도청 이번에는 뿌리 뽑자

Posted August. 06, 2005 06:18,   

ENGLISH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정부 때도 불법도청을 조직적으로 자행했음을 고백했다. 의혹이 제기될 될 때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휴대전화 도청 사실도 결국 시인했다. 독재정권 시절의 고문과 불법도청의 최대 피해자라며 국가안전기획부를 국정원으로 개편해 환골탈태를 약속했던 김대중 정권의 이중성()이 참으로 놀랍다. 민주화를 앞세워 국민을 철저히 기만한 것이며, 욕하면서 배운다는 정치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국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 장비까지 자체 개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장비를 차량에 싣고 도청 대상자가 있는 곳에 접근해 도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그동안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사생활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쪽에 오히려 정치공세니, 음해니 하며 화살을 돌렸다. 가증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본보가 2002년 국정원의 휴대전화 불법도청 사실을 보도하자 터무니없는 허위 보도라며 국정원 직원들의 이름으로 수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이 1심에서 본보의 손을 들어주었는데도 이에 불복해 항소까지 했으니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정원이 김영삼 정부 때의 도청 테이프가 유출된 사건을 계기로 역대 정권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 도청 실태를 공개한 것은 일단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와 의심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여전히 많다.

우선 불법적으로 도청한 결과물들이 어떻게 처리됐는가 하는 점이다. 모두 폐기됐다고 하지만 1997년 도청 테이프도 녹취록과 함께 나도는 마당에 그 이후의 것들이 다 없어졌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도청이라는 국가범죄에 이은 이중의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민 여론을 핑계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공개하려는 시도 또한 용납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의 뜻과는 달리 테이프 내용은 수사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대응은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호라는 점에서 옳은 결정이다.

국정원은 2002년 3월 이후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이 근절됐다고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국민은 확신을 갖기 어렵다. 최근 법원의 영장을 받은 합법적인 감청이 급증했다. 그동안 수없이 정부에 속아온 국민의 입장에선 합법을 가장한 불법 도청 사례가 전혀 없다고 믿기 어려운 것이다. 감청 업무를 해온 다른 정보기관들은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하다.

이제 불법 도청의 실체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는 일은 검찰의 몫이다. 국정원의 말대로 정말 불법 도청이 사라졌는지, 명명백백한 증거를 찾아내고 제시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과거의 도청 범죄를 낱낱이 밝히고 법에 따라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통신비밀 보호를 규정한 헌법 정신을 살리고, 진정한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는 길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이강래 의원도 빼놓을 수 없는 조사 대상이다.

진상규명과 처벌이 검찰의 일이라면 제도개선은 국회의 몫이다. 국회는 근본적인 불법 도청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불법도청이라는 독수()를 뿌리 뽑는 일은 뒷전으로 미룬 채 그동안 드러난 도청사실과 내용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불법 도청 파문을 이용해 판을 다시 짜려 한다는 말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는 먼저 그동안 도청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위증을 한 역대 국정원장과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검찰에 고발해 스스로 국회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 이와 함께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립해 국정원법에 반영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노 대통령도 나는 손해 볼 것이 없다며 불법이 낳은 증거물인 독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을 불법 도청의 공포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대통령의 절대적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