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문학(프랑스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노장 인문학자가 동양철학 중 유교의 핵심 교본 논어를 분석했다. 저자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는 이미 1980년 8월 노장사상을 펴내 17쇄를 거듭하는 호응을 얻었다. 이번 책은 도교로 대표되는 노장사상에 이어 동아시아 문화권을 지배한 핵심 사상을 분석한 2탄 격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파격적인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흔히 유교하면 버려야 할 구시대적 사고라 생각하기 쉽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공자 철학은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다.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도피적이 아니라 참여적이며, 병적()이 아니라 건강한 사상이다.공자는 합리주의자이고 인본주의자였으며 이성주의자였고 현실주의자였다. 어느 면에선 포스트모던적 사상가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499장 20편에 달하는 논어 원전을 한자 한자 해석하는 식이 아니라 인()과 가치의 논리 자연주의와 논증의 논리 참여와 정치의 논리 인정()과 도덕의 논리 예()와 규범의 논리 지혜와 인식의 논리 등 여섯 개의 핵심 메시지로 나눠 논어의 문장들을 인용하는 식으로 해설했다. 자구()만 보면 동일한 주장의 반복으로 박제화되기 쉬운 내용들이 쉽고 깊이 있는 설명 덕분에 살아 숨쉬는 고전으로 거듭난다. 인()에 대한 설명을 보자.
인은 순수하고 정직한 심성을 뜻해 허위나 가식과는 떨어져 있는 품성이다. 인은 인간이 정신적 영적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인은 모든 인간이 타고난 심성이지만, 공자가 이 덕목을 가르쳤던 이유는 개인적 무지나 사회적 조건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공자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아리스토텔레스보다도 100여 년이나 앞섰던 선구자였음에 주목한다.
노장사상을 따르는 도가들은 은둔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자와 대립한다. 공자는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주장했다. 공자는 전통과 기존질서만을 귀중히 여기고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정반대로 기존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신념을 지닌 혁명가였다. 그의 사상은 관념적인 도덕적 세계에 파묻혀 있는 사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현실에 참여하려는 실천적 교육적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동서양 철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현실과의 접점을 치열하게 고민해 온 석학만이 줄 수 있는 통합적 사고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서양적 태도가 외향적이며 전투적이고 정복적인 데 반해 동양적 태도는 내향적이며 화해적이고 자기반성적이라고 평가하고 가장 낡은 사상으로 보이던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폭언과 독선, 폭력이 빚은 현대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첨단적이고 새로운 사상으로 재조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