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랑은 권력관계라고들 말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항상 더 아프고, 상처입기 때문이다.
이 말을 떠올리게 하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감독 폴 맥기건)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멜로 영화다. 기막히게 엇갈리는 도시 남녀의 쓸쓸한 사랑을 다룬 이 영화에선 한 가지 진실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이 겹쳐진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진 여자,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그녀의 흔적을 더듬더듬 되짚어 가는 한 남자, 그 과정에서 남자 앞에 나타난 옛 애인과 이름이 똑같은 여인. 영화는 셋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사랑과 의혹, 기억과 현실을 교차시키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진작가를 꿈꾸며 시카고의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던 매튜(조시 하트넷)는 누군가가 수리를 맡긴 캠코더에 담긴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어느 날 매튜는 거리에서 카메라 속의 그녀를 발견하고 뒤를쫓아간다. 모던 댄서인 그녀의 이름은 리사(다이앤 크루거).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일자리를 옮겨야 하는 매튜가 뉴욕으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한 다음 날 리사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2년 후 매튜는 투자회사 광고책임자로 약혼녀와 함께 시카고로 돌아온다. 중국 출장을 하루 앞둔 매튜는 카페에서 우연히 스쳐간 여자가 바로 2년 전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옛 연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치 환각을 쫓듯,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도시를 헤매고 다닌다. 마침내 리사의 아파트를 찾아낸 매튜. 그의 기억 속에 너무도 생생한 옛 연인의 향기가 남아 있는 그곳에는 뜻밖에 리사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로즈 번)가 살고 있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떠나간 연인을 향한, 한 남자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다룬 멜로물이다. 그럼에도 중반부까지는 마치 스릴러처럼 서스펜스도 느껴진다. 두 연인의 만남과 이별은 현실의 시점과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회상이 변주되는 구조로 설명되고, 그 사이에 삽입된 크고 작은 반전들은 관객들을 미로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과연 어디까지 매튜의 기억이고, 어디부터 현실인가. 리사가 그를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매튜가 카페에서 만난 여자는 정말 리사가 맞을까.
마침내 2년 전 매튜와 리사가 헤어져야 했던 이유는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실체를 드러낸다. 더불어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으로 관객을 사로 잡던 영화도 점차 힘이 빠져 간다. 막판에 가서 모든 정답을 한꺼번에 알려주려는 영화의 친절함이 맥을 풀리게 한다.
영화 진주만의 하트넷은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남자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트로이에 나란히 출연했던 크루거와 로즈 번도 그런대로 매력적이다.
당신이 첫눈에 반한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어떤 광기도 용납되는가. 이런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 라파르망(1996년)의 리메이크 작으로 원제는 Wicker Park. 13일 개봉. 15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