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잘나가던 30대의 중견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미국)에게 오른손가락 마비 증세가 온 것은 1964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왼손만으로 연주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음악교사로, 음악문헌학자로 영역을 넓혀 갔다. 작곡가들은 플라이셔를 위해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작품을 썼고, 그는 꾸준한 치료로 장애를 관리했다. 하늘도 감동했는가. 플라이셔는 1982년 양손 피아니스트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피아니스트 이희아(20) 씨의 스토리는 플라이셔와는 또 다른 인간 승리 사례다. 이 씨는 한 손에 두 개씩 네 손가락만 지녔고 허벅지 아래로 다리가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도 못 꿨을 터이다. 그런 이 씨가 다음 달 팝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만과 협연을 갖는다. 6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건반 소리를 내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는 소녀, 뇌()의 이상 때문에 5분 이상 악보를 외우면 두통이 온다는 소녀의 소망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이 씨는 11세 때 클레이더만의 연주를 접하고 마음속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장애인들에게 겸양()을 가르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주변에서 받는 도움보다 더 큰 것을 돌려주는 셈이다. 클레이더만은 이 씨의 소식을 전해 듣고 내가 왜 피아노를 쳐야 하는지 알겠다고 했다고 한다. 연주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장애 아가씨의 말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소명()을 새삼 깨달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씨는 요즘 잦은 콘서트 요청으로 바쁘다. 사람들이 이 씨의 연주를 듣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연주가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씨의 모습을 통해 음악 이상의 감동을 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몇 달 전 이 씨를 만난 본보 기자는 이 씨가 패티 김 아줌마처럼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욕심도 많은 아가씨인가 보다. 클레이더만과의 협연 무대에서 이 씨의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고 싶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