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국제대회가 어제 탈북자에 대한 보복 중단, 정치범수용소 해체,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관심 촉구 등 8개 항의 서울선언을 채택하고 폐막됐다. 우리는 선언문의 취지에 공감하면서 그동안 북 인권문제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해 온 정부의 생각도 바뀌기를 기대한다. 오죽하면 국제사회가 이런 권고를 하겠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북 인권문제가 왜곡된 북 체제의 구조적 산물임은 이번에도 확인됐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북의 독재집단은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울 때부터 인권의식을 말살하고 수령의 정신적 노예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고발했듯이 김정일 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반()인권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북한이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는 북 인권개선에 대한 공개적 요구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 정책이 우선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여당의 중진의원들은 북 인권을 위해 전쟁이라고 하라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은 북 인권 개선 요구는 자결권을 위협하는 또 다른 인권침해라면서 대회 방해를 획책하기도 했다.
정부는 말보다 실천을 우선하고 있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올해에만 1조원이 넘는 식량과 비료가 북에 제공됐지만 북 당국이 이를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썼다는 구체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제대로 분배됐는지조차 알길 이 없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 인권담당 특사가 경제지원과 인권 개선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번 대회 참석자들도 북한 인권 논의의 활성화는 (오히려)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듯이 인권과 남북관계 개선을 더는 분리해서는 안 된다. 김정일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 또는 민족끼리라는 헛된 구호에 빠져 북 인권문제를 외면하면 할수록 북 주민들의 인권 참상도 나아지지 않고, 미국 일본 등 전통적인 동맹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게 될 뿐이다. 국제사회에서의 고립도 심화됨은 물론이다. 미 인권특사를 문전 박대해 김정일의 마음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이로 인한 후과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