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집권 4년째 해의 첫 공식 업무로 과학기술 통일 산업자원 노동 등 4개 부처 장관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대다수 국민의 요구는 전문가 중심의 화합형 내각을 만들어 민생경제에 전념해 달라는 것이었지만 노 대통령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불법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이상수 전 의원을 1026 재선거 낙선 뒤 곧바로 노동부 장관에 기용한 것은 보은() 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자주() 외교를 막후 조율해 온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통일부 장관에 전진 배치한 것도 민족공조를 계속 정권 코드로 밀고 가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김우식 전 비서실장을 과기부총리에 기용한 것이나, 정세균 열린우리당 임시의장 겸 원내대표를 산자부 장관에 기용한 것은 윗돌 빼 아랫돌 괴기식 인사의 전형이다.
특히 사학법 파동으로 정국이 파행을 빚고 있는 데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여당 원내대표를 각료에 기용한 것은 정당정치를 무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김완기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기용 보류를 발표하면서 유 의원이 내각에서 일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의 양해를 압박하면서까지 특정 인물을 입각시키려는 것은 청와대의 여당 무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노 대통령은 임기 초 분위기 쇄신용 개각은 않겠다며 편의주의적 각료 교체는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이번 개각에서 그동안 업무 수행능력을 평가받아 온 산자, 노동 장관을 장수() 장관이라는 이유로 교체했다. 여기에 입각 대상자에 대한 정치적 배려나 노동계의 부당한 퇴진 요구가 작용했다면 대통령 스스로 국정의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개각으로 누가 뭐래도 내 방식대로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는 거듭 드러났다. 민의는 물론 당심()마저 외면한 인사로 새해를 시작해서야 이 정권에 희망을 걸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