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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학 협박해 무릎 꿇린 정권

Posted January. 09, 200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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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는 사립학교들의 신입생 배정 거부 입장을 어제 철회했다. 이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로써 사학법 개정 파문이 모두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개정 사학법에 대한 사학들의 반발을 정권 차원의 협박에 가까운 대응으로 무력화()시키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태도는 두고두고 시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난주 제주도 5개 사립고교가 신입생 배정 거부 의사를 밝히자 청와대는 헌법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며 사학 비리의 전면 조사를 지시했다. 사학에 대한 감사권을 갖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는 물론이고 법무부, 행정자치부에 검찰에게까지 총동원령을 내리다시피 했다.

이런 대응은 지난날의 권위주의 정권이 써먹었던 수법과 다를 바 없다. 제1야당의 반대에 귀를 막고 사학법 개정을 강행한 여당에 이어 청와대가 사학재단과 종교단체 등의 반대를 원천 봉쇄하려는 것은 민주화 정권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런 초강경 자세는 다른 교육현안에서 정부가 보여줬던 태도와도 너무나 다르다.

얼마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집단적으로 교원평가제 반대시위를 하고 반()세계화 동영상 자료를 제작한 것은 학생들의 학습권은 물론이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흔드는 행위였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는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정책 홍보사이트인 국정브리핑에 실린 (교원)평가에 당당한 교사, 경쟁력 있는 학교 만든다는 기사에 대통령도 여기서 배우고 갑니다라는 짤막한 댓글을 올렸을 뿐이다. 교육전산망 정책에 반대해 연가투쟁을 벌여 학교운영에 차질을 빚었던 2003년 NEIS 파동 때도 정부는 연가투쟁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를 솜방망이 징계해 관대함을 보여줬다.

이와는 달리 개정 사학법에 대해선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것이 정권 내 분위기다. 유재건 열린우리당 신임 의장은 사학법 재개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하기도 했다. 사학법 개정을 밀어붙인 명분은 사학비리 근절이었으나 청와대가 새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사학비리 조사를 지시함으로써 지금의 법으로도 비리 대응이 가능함을 스스로 인정했다.

사학 비리는 현행법에 따라 철저히 감시하고 사학법은 7월1일 발효 이전에 재개정해 파국을 피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