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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가) 한국서 제2의 인생 포석중

Posted March. 03, 20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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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초반엔 기본기가 탄탄해 보였다. 상수()의 공격에도 주눅 들지 않고 맞받아쳐오는 모양이 자신의 바둑에 나름대로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가 바둑을 알게 된 것은 1992년. 18급도 안되는 친구 하나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그에게 바둑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그 땐 돌 따먹기에 불과했어요. 나중에 끝맺음, 즉 계가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이 저희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곤 두 눈을 내고 사는 법, 계가하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2001년 그의 바둑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매년 열리는 유럽 아마추어바둑대회에 참석한 한국 프로기사 윤영선 4단에게 9점 지도대국을 받게 된 것.

9점으로 완패를 당했죠. 바둑의 깊이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후 유럽바둑대회에 참석하면서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을 알게 됐다. 급기야 지난해 5월 두 달 휴가를 내서 명지대에 머물렀다. 그 때 한국 바둑 해외보급의 대부인 한상대 씨가 유학을 권했다.

중반 전투=그는 대국 초반에 기세를 올리는가 싶었지만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수(기자)가 반상의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혼란스럽게 만들자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중반전이 피크를 이룰 무렵 넉 점의 효과는 두 점 수준으로 떨어졌다.

파리로 돌아간 그는 다니던 컴퓨터 서비스 회사(아토스 오리진)를 그만두고 서울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생판 모르는 한국에서, 그것도 바둑이라는 생소한 게임을 위해 유학을 하겠다고 하자 당장 그만 두라고 호통을 쳤으나 바둑이 목숨만큼 소중해진 아들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일본 프로기사와도 바둑을 둬봤는데. 일본 바둑은 깔끔하고 정제된 바둑이지만 활력이 부족해요. 그에 비해 한국 바둑은 활달하고 전투적인 면이 마음에 들어요. 특히 여기저기서 싸움을 잘 벌이는 이세돌 9단을 좋아합니다.

그에게 어떤 기풍을 갖고 있냐고 묻자 대뜸 초보 기풍이라고 답한다. 아직 실력이 약해서 기풍 자체가 없다는 뜻이란다. 실력은 약해도 바둑의 깊이는 짐작하는 눈치다.

끝내기=종반 무렵 이미 백의 역전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는 열심히 계가를 해보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 상수에게 한 수라도 더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바둑을 마치고 집을 헤아려보니 백 47집 대 흑 34집. 기자의 13집 승이었다. 그는 초반엔 좋았는데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자는 그를 아마 초단이라고 판정했다.

2년간 공부하면 어느 정도 실력이 될 것 같으냐고 묻자 함정 같은 질문이라며 웃는다. 열심히 공부할 따름이지만 목표는 아마 4단이라고 한다.

그럼 2년 뒤에 뭘 할 거냐고 다시 물었다.

가능성은 열려 있어요. 한국에 남을지, 프랑스로 돌아갈지는 그 때 가서 결정할 겁니다. 지금은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바둑 생각만 하고 있어요.



서정보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