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22일. 프랑스 파리 외곽의 낭트르대학 학장실을 다니엘 콩반디(현 유럽의회 의원) 등 학생 8명이 점거했다. 미국의 베트남 공습에 항의하다 체포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기성체제와 산업사회의 모순에 반발하는 다른 학생들의 수업거부와 노동자들의 총파업도 잇따랐다. 프랑스 사상 최초의 노학()연대 투쟁이었다. 5월 파리는 돌멩이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부와 산업체의 활동이 마비되는 전쟁터가 됐다. 그해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으로 파급된 이른바 68혁명이다.
프랑스가 제2의 68혁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만성적인 고()실업, 저()성장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업이 26세 미만의 젊은이들을 채용 2년 이내에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최초고용계약(CPE) 법안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연 2%가 안 되는 경제성장으로는 23%에 이르는 청년실업률을 낮출 수 없다고 보고 CPE법안을 통해서라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대학생과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을 우려해 반기()를 들고 있다. 18일에도 전국적으로 150만 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독일 슈피겔지는 68혁명은 기득권과 구()질서에 맞서 싸운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젊은이들이 기득권을 보호해 달라며 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68혁명의 주역인 콩반디 의원도 오늘의 학생들은 변화와 생활의 불안정을 두려워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깨는 개혁의 칼을 좀더 일찍 뽑아들었다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철밥통 식 고용 보장과, 성장보다 복지를 중시하는 좌파 정책을 펴다 덫에 걸린 프랑스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다.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나눠먹기에 급급하고, 노조의 기득권 사수()를 등에 업고 경쟁을 피하려 한다면 미래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장래의 혁명의 불씨나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나 노동계나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