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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워드가 오는데

Posted April. 04, 200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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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농어촌 남성의 36%가 외국 여성과 결혼했다. 이 같은 추세로 인해 농어촌 학교에는 혼혈아동이 점점 늘고 있다. 어느 지역의 교실에는 학생의 70%가 혼혈아동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농어촌이 가장 먼저 '혼혈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단일민족국가'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온 대한민국에는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예견된 일이다. 세계화는 인구, 재화, 기술의 대규모 이동을 불러왔고 그 결과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접촉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역사회는 알게 모르게 이미 다양한 인종으로 주민이 구성되고 있다. 주민의 체류신분은 국민, 2중 국적인, 영주자, 정주자,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친척 방문자, 불법체류자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문화든 속을 잘 들여다보면 완전히 단일한 문화는 없다. 그 내부의 다양한 소문화()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문화로 진화하는 진행 과정이다. 그리고 어느 문화든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다. 타 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비교하며 자기의 모습을 잡아 온 것이다. 이는 1970년대 호주와 캐나다 같은 이민국가가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게 된 인식의 근간이다.

또한 완벽한 단일민족국가도 세상에 거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사실 단일민족이 되려면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돼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 타 문화와 교류하면서 자기를 객관화하고 동시에 정체성을 보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점점 더 개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격리되어 '문화적 섬'을 만들기 쉽다. 또한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내부의 다양한 소문화, 소집단들도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하고 강압적인 획일화 체제로만 겨우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화 시대에는 단일민족, 단일문화라는 말이 자부심의 표현이기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문화와 민족은 자생능력을 가지고 진화해야 한다.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외국인 주민 100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어차피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변해야 한다면 농어촌에서 결혼을 통해 그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장 문화적으로 배타적이고 폐쇄된 농어촌 주민이 외국인과 결혼하여 혼혈의 자녀를 갖게 된다는 것은 한국이 큰 탈 없이 다민족 다문화의 사회로 연착륙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준다.

이렇게 시작된 변화를 위해서는 체제의 정비가 시급하다. 우선 외국인 배우자들이 우리 문화를 배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기 문화를 버리고 한국인이 되라고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배워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혼혈자녀들에게도 외국인 부모의 문화와 언어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서 양쪽 부모를 똑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울러 이런 변화가 바람직하게 이루어지려면 결혼을 이용해 외국 여성을 성적 노예, 가사 노예 등으로 얽어매려는 일부 한국인 배우자의 악행을 저지할 수 있는 치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영국 영화 '비밀과 거짓말(Secrets and Lies)'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백인 여성이 미성년자 때 낳아서 한번 보지도 못하고 입양시킨 흑인 딸이 자란 뒤 생모를 찾는 얘기였다. 모녀가 다시 만났을 때 흑백의 피부색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3일 미식축구의 영웅 하인스 워드가 방한한다. 혼혈 사회를 맞는 한국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박화서, 명지대 교수, 이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