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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포 소녀

Posted August. 03, 200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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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그저 유치하다고 넘겨 버리지는 말 것. 나는 B급이오 하며 의도적으로 가볍게 보이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니까.

영화 다세포 소녀는 즐기면서 사는 발칙한 고딩들의 엽기 발랄한 코믹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B급 달궁(본명 채정택)의 인터넷 연재만화 다세포 소녀가 원작. 원작 만화는 수채화 느낌이 나는 순정만화풍 그림에 질펀한 성적 농담의 부조화스러운 조화로 마니아 군단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연재만화 각색한 청춘멜로

이 영화의 배경은 쾌락의 명문 무쓸모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이 성병을 이유로 조퇴하고, 수업시간에 레이스 달린 팬티를 입은 남자 선생님이 제자에게 SM(사도마조히즘)을 연상케 하는 매질과 채찍질을 부탁하는 그런 곳이다. 원조교제로 가족을 부양하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는 스위스에서 전학 온 초절정 꽃미남 안소니(박진우)에게 반하지만 안소니의 관심은 딴 데 있다. 교내에서 유일한 숫총각인 외눈박이(이켠)는 외모 때문에 집단따돌림(왕따)을 당하지만 그런 외눈박이를 뜨겁게 바라보는 눈길도 있으니.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그리고 이들 캐릭터가 현실을 과장하면서 비트는 데 있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등에 인형같이 생긴 가난을 달고 다닌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가난한 소녀들은 항상 현실을 이겨 내는 꿋꿋하고 밝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침울한 이 소녀는 돈, 돈 하는 궁상의 극치. 완벽한 꽃미남 안소니는 이름마저 모든 소녀의 판타지 대상인 들장미 소녀 캔디의 남자 주인공과 같지만 온갖 잘난 척에 어설픈 영어 단어를 섞어 쓰며 욕을 남발한다. 외눈박이와 그의 아름다운 남동생 두눈박이, 여자들은 왜 흰 팬티를 선호하나 등의 미스터리를 푸는 테리&우스 등은 존재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알고 보니 오빠, 알고 보니 엄마라는 식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해 버리는 TV 드라마의 관습을 패러디하며 인생은 역시 TV 드라마라고 비꼬기도 한다.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되레 웃음 유발

원조교제, 사도마조히즘, 크로스 드레서(이성복장 애호가), 동성애 등 사회적 금기로 여겨지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가벼운 웃음의 소재로, 귀여운 음담패설로 만들어 버리는 이 영화는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그런 태도가 역설적인 리얼리티를 보여 준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은 원작만큼만 재미있다. 에피소드의 반전도 뻔히 예상되는 수준으로 기발한 파격과 상상력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김옥빈의 흔들녀 춤이나 가난한 소녀의 엄마(임예진)와 왕칼언니(이원종) 등 중견 배우들의 엽기적인 변신은 이미 인터넷에서 너무 많이 알려져 영화를 볼 때는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다양할 것이다. 극중 안소니의 대사처럼 컬처 쇼크를 느끼든지, 섹스 코미디를 기대했다가 야한 장면이 없어 김이 새든지, 아니면 동성애나 원조교제 정도는 이제 놀라울 것 없는 소재라서 식상함을 느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세상엔 안 되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1519세들이 가장 열광할 듯. 10일 개봉, 15세 이상.



채지영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