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사업조합이 구청을 상대로 한 집단 시위에 불참한 조합원에게 시위불참비 355만 원을 부과한 것은 비록 조합원들끼리 합의한 사항이더라도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번 판결로 전국적으로 아파트 재건축이나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조합 측이 조합원들에게 징벌금을 내세워 집회 및 시위 참여를 강제하고 있는 행위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부(부장판사 강재철)는 서울 종로구 무악동 M재건축사업조합의 조합원이었던 조모(48) 씨가 조합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조 씨는 시위불참비 명목으로 부과된 355만 원을 조합에 내지 않아도 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한 번 불참에 10만 원씩=2002년 9월 M재건축사업조합은 재건축사업 추진 문제로 종로구청과 마찰이 생기자 조합임시총회에서 집회와 시위를 통한 실력 행사에 나서기로 하고 이에 참가하지 않은 조합원에게는 한 번 불참 때마다 5만 원을 시위불참비로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2003년 11월에는 조합임시총회를 다시 열어 시위불참비를 10만 원으로 올렸다. 조합 결정의 근거는 조합원의 비용 납부 의무를 규정한 조합의 정관. 조 씨는 두 차례의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조합은 2002년 9월부터 2004년 말까지 55일 동안 종로구청 근처에서 집회와 시위를 했다. 그러나 조 씨는 직장 출근 때문에 집회에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고, 조합 측은 조 씨에게 시위불참비 355만 원을 내라고 통보했다.
이번 사건은 조 씨가 지난해 2월 집을 팔게 되면서 소송으로 비화했다. 조 씨가 연립주택을 1억7000만 원에 팔자 조합은 조 씨에게 시위불참비를 내지 않으면 집을 산 사람에게서 돈을 받겠다고 압박했고, 조 씨는 매매대금 중 390만 원을 부동산중개업소에 맡긴 뒤 소송을 냈다.
집회와 시위에 불참할 권리도 헌법의 기본권=이번 소송의 쟁점은 조합 측이 조 씨에게 시위불참비를 부과한 근거로 내세운 임시총회의 결의가 효력이 있는지였다.
지난해 12월 1심 재판을 맡았던 당시 서울서부지법 조병구 판사는 조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조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집회와 시위에 참여할 자유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않을 소극적인 자유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집회와 시위 참여 문제를 개인이 자기결정권에 기초해 판단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조합이 강제하는 것은 집회와 시위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도 조합이 시위불참비 부과의 근거로 내세우는 조합 정관은 조합원들에게 조합의 실비 비용을 부담시킬 근거는 되지만 제재적 성격이 있는 시위불참비의 부과 근거는 될 수 없다며 조합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