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트맨은 묘기(stunt)를 부리는 사람(man)이다. 영화에서 배우가 못하는 역할을 대신하거나, 배우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스턴트맨이 대역()으로 곧잘 활용된다. 영화사상 최초의 스턴트맨은 미국 기병대 출신의 프랭크 하나웨. 그는 1903년 제작된 12분짜리 단편영화 대열차강도에서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대역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이 줄 위에서 연산군의 화살을 피하는 장면은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의 권원태 씨가 대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역은 영화나 드라마의 전유물이 아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자신을 쏙 빼닮은 대역 2명을 활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나이와 키, 외모가 비슷한 사람을 뽑아 눈속임 훈련을 시켜 군부대나 농장 방문 같은 공개 행사에 대신 내보낸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나이 64세, 키 165cm, 몸무게 약 85kg이다. 이런 신체적 조건에다 외모까지 닮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성형수술까지 시켰다고 한다. 행동거지도 비슷해 수행원들조차 진짜로 속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진짜 김 위원장은 건강상태가 아주 안 좋아 칩거 중이고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김 위원장은 모두 가짜라는, 믿거나말거나 한 소문까지 나돈다. 그럴듯한 시나리오까지 곁들여져 있다. 김 위원장이 잘 아는 한 일본인이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 가서 김 위원장을 만났는데 못 알아보더라는 것이다. 또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진짜 김 위원장과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한 것도 가짜의 한 증거라는 주장이 있다.
김 위원장이 대역을 쓰는 게 사실이라면 암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나 건강 때문일 것이다. 1959년 집권 이래 638번이나 암살 위협을 받았다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대역을 종종 썼다니 총알받이용이란 게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현재 심장병과 당뇨를 앓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니 건강 때문이란 주장도 그럴듯하다. 이래저래 여전히 베일에 가린 북한이요, 김 위원장이다.
이 진 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