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삵 한강에 매

사업가 김성철(가명45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지난 8월 중순, 서울 북한산에서 야간 산행을 하다 마주친 그놈을 잊지 못한다.

김 씨는 북한산의 한 능선 부근에 올라 텐트를 치고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잠이 들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텐트 밖에서 나는 사각사각 소리에 김 씨는 잠을 깼다. 텐트 문을 조용히 연 그는 깜짝 놀랐다. 웬 큰 물체가 김 씨가 남겨 놓은 음식을 먹고 있었던 것.

달빛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몸길이가 1m는 돼 보였어요. 인기척을 느끼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숲 속으로 사라지더군요. 그 번쩍이는 눈빛은 정말 섬뜩했죠.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삵(살쾡이)이었다.

삼육대 응용동물학과 이정우 교수는 북한산은 자연 상태가 양호해 극소수이긴 하지만 삵이 서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개발로 산림이 훼손되면서 도심에서 거의 흔적을 감췄던 삵이 아직 북한산에서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58년간 서울에 4000여 종의 생물 서식=본보는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1948년 경기중학교에서 발간한 남산의 식물을 비롯해 한강 동물상에 관한 연구(1984년), 남산공원 자연생태계현황조사 및 관리방안(2006년) 등 동식물 서식 현황 자료 60권을 입수해 3개월간 분석했다.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의 58년에 걸친 동식물 서식 상황을 종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482006년 서울에는 곤충 1895종을 비롯해 식물 1794종, 조류 205종, 어류 63종, 포유류 31종, 양서파충류 28종 등 총 4016종이 서식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 구아미 자연자원팀장은 이번 분석에서 제외된 버섯 등 균류, 지의류와 일부 곤충류까지 포함하면 서울에는 총 5000여 종의 생물이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강과 북한산, 생태계의 보고=이번 분석에서 가장 많은 생물이 서식했거나 서식 중인 것으로 나타난 곳은 한강과 그 지천(안양천, 중랑천 등)이다. 곤충 1541종 등 총 2582종에 이르는 동식물의 서식이 기록됐다.

멸종위기 1급인 매는 한강 밤섬과 월드컵공원, 안양천 등 3곳에서 목격돼 한강 주변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총 1886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 북한산은 삵을 비롯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 2급 야생 동식물 37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8종이 서식하는 서울 생태계의 보고다.

북악산 노루를 아시나요?=최근 일부 등산로가 개방된 청와대 인근의 북악산(백악산)에는 서울시 보호종인 노루가 산다. 사람의 접근을 오랫동안 제한한 덕분이다.

오소리는 관악산과 청계산, 족제비는 양재천과 청계산 불암산 탄천 한강하류 난지도, 고슴도치는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 등에서 서식했다.

서울시는 이번 문헌조사를 통해 확인된 4000여 종의 동식물이 현 시점에 얼마나 생존하는지 실사를 통해 파악한 뒤 내년 상반기 서울생물목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생물분포지도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황태훈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