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인사담당자는 최근 사원 어머니 면담이라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뽑아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던 이공계 석사 출신 남성 신입사원 한 명이 연수를 마치고 지방으로 발령이 나자 그 어머니가 인사부장 면담을 요청한 것.
아들의 우울증 진단서를 들고 회사로 찾아온 어머니는 우리 아이에게 지방근무를 시킬 수는 없다며 울먹였다. 그러나 발령은 철회되지 않았고 이 신입사원은 얼마 후 회사를 그만뒀다.
인사담당자는 요즘 같은 풍토라면 어머니가 찾아오는 게 놀랄 일도 아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입사시험에 붙으려고 학점 따고 어학시험 통과하는 데 집중하느라 도통 옆사람도 안 돌아보고, 세상살이에도 관심을 안 둬서 그런 것인지. 일선에 배치해 놓고 나면 어떻게 기본적인 조직 적응 능력도 없는 사람들을 신입사원으로 뽑았느냐고 지청구 듣는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국 기업들은 지난 10여 년간 줄곧 신입사원의 전공에 대한 지식과 외국어 구사능력이 부족하다며 현장성이 떨어지는 대학 교육에 불만을 토로해 왔다. 각 대학은 이에 따라 일정 어학실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 강제제도까지 만들어 가며 전공지식과 외국어 능력을 길러 주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최근 신입사원을 맞아들이는 기업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신입사원들의 전공에 대한 이해나 외국어 구사능력은 뛰어나지만 조직의 일원으로서 부적응증이 심하다는 것.
전문가들은 이를 1980년대에 태어나 컴퓨터와 같이 자라고 2000년 이후 대학에 입학해 취업 준비에 매달려 온 신인류 직장인들, 이른바 0080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외국어, 수리능력 뛰어나지만 조직이해력, 문제해결력 부족
한 제약회사의 4년차 영업사원 박모(33) 씨는 지난해 말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강사로 나서 주말에 문을 여는 병원이 있으면 일요일이라도 찾아가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다가 한 신입사원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저, 선배님, 농담이시죠?
2000년대 초반 학번인 이 회사의 지난해 신입사원들은 첫날부터 힘들어서 못 하겠다, 그만두겠다는 불평을 서슴지 않았고 결국 1년도 안 돼 입사자의 3분의 1이 그만뒀다.
현장의 문제를 돌파해 내지 않고 나 위주의 사고를 하는 신입사원들에 대한 불만은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이 삼성, LG, SK, GS그룹의 계열사 등 국내 532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이 보고서에서 인사담당자들은 4년제 대졸 신입사원의 직업기초능력 (10개 항목) 가운데 기대 수준의 80% 이하인 항목으로 종합적 판단을 통해 창조적이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78%) 조직이해력(80%)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능력(80%) 등을 꼽았다. 반면 외국어능력(95%)과 통계확률도표를 이해하는 수리능력(90%)은 기대 수준에 거의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신인류 직장인들이 1980년대 패스트푸드, 컴퓨터와 함께 태어나 사회적 제약이 사라지고 경제적으로 풍요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외환위기 이후 대학에 입학해 취직 전쟁을 준비하는 대학 시절을 보내면서는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지향적인 성향을 갖게 됐다고 분석한다. 이런 세대가 취직을 하며 사회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2, 3년 전부터 전통적인 기업조직문화와 부딪치며 때로는 회사 내 심각한 세대 간 부조화를 낳고 있다는 것.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풍요 속에서 고민 없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던 신인류 세대에게 상사의 지시를 따르고 고객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회사는 낯선 세계라며 기업들이 신인류 직장인 문제를 간과한다면 회사 내 세대차는 점점 더 큰 조직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신인류 직장인들이 기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디지털 세대는 자기표현이 분명하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단체 문화를 강조하는 직장에는 적응하기 힘들어도 개인의 성과를 강조하는 기업에는 잘 적응하고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