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에게 통일전선은 너무 익숙해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용어다. 공산혁명 전술인 통일전선은 목적을 위해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조직이나 계급과 일시적으로 연합하는 전술적 동맹이다. 러시아혁명 직후에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유럽에서의 공산혁명이 좌절되자 사회민주당과 제휴를 시도한 것이 시초다. 남한에서는 1946년 조선공산당 주도로 좌익 정당과 사회단체가 결성한 민주주의민족전선이 최초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하기 위한 통일전선 전략을 한시도 버린 적이 없다.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서 올해 한국 대선을 계기로 매국적인 친미반동 보수세력을 결정적으로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 있게 벌여 나가야 한다고 한 지침도 남한 내의 통일전선을 이용하려는 수작이다.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는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한의 친북 정권 및 좌파세력과 일체가 돼 통일전선을 펴는 3위1체 전략을 쓰고 있다. 이 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친북좌파 단체들이 활개 치는 오늘의 현실이 그 증거다.
경남 지역의 민주노총, 전농 등 150여개의 이른바 진보단체들이 가입한 경남진보연합이 간부 교육용 자료집에 통일전선 건설 원칙을 소개해 경찰이 수사 중이다.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혁명 전위대의 홈페이지 구국전선이 제시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광범위한 민중이 참여할 때 통일전선은 그만큼 더 위력적이며, 노농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나가는 가운데 광범위한 중간층 세력을 결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경남진보연합 책임자는 통일 관련 단체 등의 사이트에서 발췌한 것으로 구국전선은 알지도 못 한다고 말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얼치기 진보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통일전선 주도세력은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전리품을 독점하기 위해 함께 투쟁한 동맹세력을 다시 적으로 삼아 또 다른 통일전선의 희생물로 만든다. 북의 통일전선 전략에 부화뇌동하는 친북좌파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