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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행시대

Posted February. 22, 2007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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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수속 대행업체 D사 대표 이형권(34) 씨의 사업 아이디어는 이혼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못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쁜 직장인과 맞벌이 부부가 많은 현실에서 나왔다. 법정에서 다투는 소송 이혼은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쌍방이 동의하는 협의 이혼은 몇 가지 서류만 당사자가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이 씨는 이혼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관공서에서 발급받고 일부는 직접 작성해주는 사업이 잘될 것으로 보고 2년 전 창업해 성공했다. 당시 3, 4개에 불과했던 이혼 수속 대행업체는 지금 전국에 수십 개로 늘어났다.

장을 봐서 배달해주는 서비스부터 이혼서류 준비까지, 애인 역할부터 부모 대역까지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일을 대신해주는 생활 대행사업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집이나 술집에 놓고 온 서류나 물건을 갖다 주는 대행업체까지 생겨났다. 비서가 따로 없다. 시골에 있는 산소의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기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부모와 학교의 역할이었던 자녀 교육을 떠맡은 사교육도 대행사업에 속한다.

못하는 게 없다는 역할 대행업은 TV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도 등장했다. 애인이나 결혼식 하객 역할 대행은 기본에 속한다. 부모에게 알리기 곤란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업체에서 소개해준 대행부모를 학교에 모시고 가는 일도 있다니 대행의 한계가 어딘지 모르겠다. 안 되는 게 어디 있니라는 유행어가 실감나는 대행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전체 가구 중 독신가구가 2000년 15.5%에서 2005년 20%로 증가했다. 이 또한 대행시장이 커지는 요인이다. 시간의 효율적 활용이란 측면에서 대행사업은 시()테크 사업이기도 하다. 대행업체 이용은 직접 일을 처리할 때보다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적다는 점에서 삶의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벌초처럼 정성으로 해야 할 일까지 대행으로 처리하는 세태는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