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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밤새 쓴 육필원고

Posted February. 27, 2007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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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과 글을 일일이 반박하자니 솔직히 독자가 지겨워할까봐 조심스럽다. 그래서 요즘에는 대통령 발언이 오버하는 감이 들어도 국민의 정신건강을 고려해 웬만하면 외면하려 한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어제 재외공관장 회의 연설에서 노무현 정부 4년에 대해 그다지 큰 잘못이 없다면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탓을 했다.

이 실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사설 논조의 98%가 긍정적 희망적이었으나 현 정부에서는 89%가 부정적 비판적이라는 조사를 인용했다. 언론자유 말살 상태이던 5공화국 때와 비교하는 의도는 독재정권의 언론통제가 그립다는 뜻인가. 5공 때 KBS에 근무했던 이 실장은 땡전 뉴스를 하던 방송사 안에서 독재정권을 향해 외마디 항변이라도 해 보았는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취임사준비위원장을 지낸 지명관 씨는 노 대통령은 언론자유를 어떻게 깨보려고, 자기 마음대로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조금이라도 반성할 생각은 없나.

부동산 버블이 세계적 현상이라는 그의 변명도 정책 실패를 호도하는 둔사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서울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값이 무려 300%까지 뛰었는데 이런 수준의 집값 폭등 사례가 한국 말고 또 있는지 공관장회의에 참석한 대사들에게 확인해 보기 바란다. 다른 통계는 제쳐두더라도 재정경제부 조사에 따르면 작년에 자영업자 4만8000명이 단순 노무자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 실장의 연설문에는 눈을 씻고 봐도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다는 말이 없다.

이 실장은 이 연설문을 밤새 직접 쓴 육필원고라고 소개했다. 심야에 작성한 문장은 격정에 흐르거나 자기중심 논리에 빠지기 쉽다. 해럴드 윌슨 전 영국 총리는 지도자의 가장 큰 재산은 밤에 잠을 푹 잘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을 남겼다. 밤에 잘 자야 낮에 맑은 정신으로 국정을 살필 수 있다. 심야에는 대통령이 인터넷도 안 하고, 비서실장이 육필원고도 안 쓰는 게 국민을 위해 좋을 것 같다.

황 호 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