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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장놀이

Posted March. 31, 200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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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에서 대장놀이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 놀이가 마냥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거다. 가위바위보로 대장을 결정하는 민주적인 대장놀이라도 대장이 되지 못하면 괜히 속이 상한다. 늘 자기가 대장을 해야 한다고 우기는 힘센 아이라도 만나게 되면 상황은 정말 안 좋아진다. 대장에게 차려, 경례는 물론이고 딱지 바치기, 책가방 들어 주기 등 부하가 돼야 한다. 물론 대장이야 한없이 으스댈 수 있어 좋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의 대북() 비밀접촉을 주선한 권오홍 씨가 어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안 씨가 북과 접촉한 목적은 우리끼리 대장놀이라고 부르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것이었고,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특사 파견이 논의 대상이었다고 털어놨다. 놀이의 대장인 노 대통령도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의 보고를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상세히 보고받았다고 권 씨는 말했다.

안 씨는 이 정권 출범 직후 집권당 사무총장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지만 2003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지난해 사면 복권된 뒤 어떤 공직도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아무 권한도 책임도 없는 사람이다. 권 씨의 주장대로라면 그런 사람에게 나라의 미래를 바꿔 놓을지도 모를 남북정상회담의 길 닦기를 맡긴 셈이다. 북이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안 씨를 원해서였다고 하지만 그건 국민에게 국정을 보고할 필요가 없는 김정일 독재체제의 방식일 뿐이다. 정상회담을 (골목)대장놀이로 불렀으니 이런 지적 자체가 부질없겠지만 그래도 입맛은 쓰다.

더구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그제 이 사안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라는 말로 안 씨를 두둔한 것을 보면 혹시 이 장관도 정상회담을 대장놀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은 안 씨의 대북 접촉과정을 동네 정치라고 조롱했지만 이건 동네 정치만도 못하다. 도중에 드러나서 다행이지 만약 대장놀음 수준에서 뭔가 합의라도 이뤄졌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또 무슨 봉을 잡혔을지 모른다.

김 창 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