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4년 3개월을 끝내고 9개월을 남겨놓은 시점이다. 차기 대선 투표일까지는 7개월이 채 안 남았다. 산행으로 치면, 하산 길 중에도 마을에서 나는 소리들이 들릴 곳까지 거의 다 내려왔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산 밑의 소리가 듣기 싫은지 정부-언론-국민의 소통()을 극도로 차단하는 취재 제한 조치를 22일에 취했다. 이른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날인 23일, 노 대통령은 제주도 감귤농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옛날로 치면 대통령도 이 정도면 좀 괜찮은데 요새 우리 국민들이 눈이 높아져 영 안 쳐준다. 나도 품질 향상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 동그라미 점수를 매기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4년 3개월 동안 못한 자신의 품질 향상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어 노 대통령은 어제 부처님오신날 봉축 메시지에서 선진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와 통합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하며,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품질 향상이 돼 구구절절 옳은 말을 하는 것인가. 그렇게 믿고 싶어도 지난날 그가 셀 수 없이 보여 온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선뜻 믿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4년 3개월간 그는 과연 국민통합의 리더였던가, 분열과 갈등의 주도자였던가.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짓밟는 반()민주적 조치를 조금도 주저 않고 취하는 것이 21세기 선진국으로 가는 길인가, 암흑의 구시대로 국민을 몰고 가려는 것은 아닌가.
한때는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더니 요즘엔 내가 속한 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며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대통령이다.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법까지 만들고도 뒷전에서 측근의 대북 비밀접촉을 지시한 것도 그다. 이런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겠는가.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제1의 모델이 그 자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