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늘고 있는 교장공모제는 CEO형 교장을 학교현장에 앞세우는 적극적인 교육정책이다. 젊은 교사든, 교직 경험이 없는 민간인이든 능력만 인정되면 학교 경영의 책임을 맡을 수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 교육경쟁력 강화에 있다. 국가가 아
무리 드라이브를 걸어도 학교가 꼼짝 않으면 소용이 없으므로 이들에게 현장개혁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국내에도 9월부터 55개 학교에 공모 교장이 처음 배치된다. 우리도 경쟁력 강화가 명분이지만 학부모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 이유는 양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과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의 엇갈린 반응 때문이다. 교총은 교육경쟁력을 중시하고 전교조
는 경쟁을 죄악시해 온 단체다. 교총은 교육의 자율성 확대를 지지하지만 전교조는 평등을위해 국가 개입을 요구한다. 평소 노선대로라면 교총은 교장공모제에 찬성해야 하고, 전교조는 반대하는 게 맞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서로의 속셈 때문이다. 전교조는 교장공모제가 도입되면 전교조가 미는 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어 찬성이다. 한술 더 떠 교사들 손으로 교장을 선출하자고 요구한다. 반면에 교총은 회원 중에 교장과 고참 교사들이 많아 교장 자리가 줄어드는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 측면이 있다. 교육부는 절충안을 마련했다며 교장공모제를 밀어붙였으나 심사과정에서 여러 추문이 나오고 있다.
어제 공개된 교총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공정 심사에 금품수수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해당
사자인 교총 조사이므로 가감해서 봐야 하지만 문제점이 노출된 것만
은 분명하다. 교육부가 서두른 탓이다. 교장공모제는 교원평가제와 같이 이뤄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가 누적되어 있어야 교장 적임자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원평가가 공백인 상태에서 교장공모제를 성급히 하려니 주먹구구가 되고 잡음이 나오는 것이다. 외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특히 교육계 실세인 전교조의 이념 편향 문제와 학교장악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교육경쟁력을 높이기는커녕 깎아 내리는 제도가 될 수 있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