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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신은 늦었지만 답신은 뜨거웠다

Posted January. 17, 200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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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지난달 말 미국 시카고에서 서쪽으로 260km가량 떨어진 일리노이 주 록아일랜드 카운티의 작은 요양소.

2006년 말 은퇴 후 처음으로 한국인 방문객을 맞은 한국인의 친구의 표정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말을 이어가는 게 힘든 듯 한겨울 날씨에도 얼굴엔 진땀이 흘렀다.

레인 에번스(56) 전 하원의원. 미 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한 주역이었던 그는 뒤늦게 전달된 한국 정부의 훈장을 어루만지며 감사의 뜻을 표현하려 애썼다.

이 훈장은 그가 24년간 연방 하원의원으로 일하면서 한인을 비롯한 소수민족과 약자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한국 정부가 2006년 11월 수여한 수교훈장 광화장이다. 그러나 훈장이 주인에게 전달되기까지는 1년 1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파킨스병 악화로 은퇴한 이후 그는 사실상 외부와 연락이 두절됐다. 낮에 간병인만 들르는 요양소에서 힘겹고 외로운 투병생활을 했다. 법률대리인인 동생은 병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며 외부인과의 접촉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중반 마침내 법률대리인이 바뀌었고 새 법률대리인은 한국 정부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날 요양소 면회실에서 열린 훈장 전달식은 간소했지만 진지했다.

에번스 전 의원은 김은석 주미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에게서 훈장을 전달받은 뒤 고맙다. 이 먼 데까지 와줘서란 말을 거듭했다. 간병인과 법률대리인이 박수를 쳤다.

그는 지난해 6월 의회를 통과한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말을 꺼냈다. 캘리포니아 출신 젠틀맨이 노력해서 잘 됐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젠틀맨이란 지난해 결의안 상정을 주도한 마이클 혼다 의원을 지칭한 것.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걸 보다 못한 간병인 등이 이제 말씀은 그만하셔도 된다며 말렸지만 그는 북한 핵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싶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31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돼 12선 의원을 지낸 그는 1995년경부터 파킨스병 증세를 보였다. 워낙 청렴했던 그는 모아 놓은 재산도 많지 않다.

에번스 전 의원과 위안부 결의안 문제로 협력하며 우정을 나눴던 서옥자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회장은 함께 일하던 많은 사람이 그가 놀라운 의지로 병을 이겨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기홍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