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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귀국한다고 비행기표까지 끊어놨는데

18일 귀국한다고 비행기표까지 끊어놨는데

Posted March. 05, 200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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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복무하다 헬기 추락사고를 당한 박형진(50사진) 중령의 부인 신난수(48) 씨는 4일 남편의 체취가 담긴 군복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박 중령이 1월 휴가 때 집에 두고 간 군복으로 왼팔에는 태극마크, 오른팔에는 유엔마크가 붙어 있었다.

신 씨는 본래 네팔은 남편이 가야 할 곳도 아니었다며 최전방으로 해외로 홀로 떠돌며 고생만 하더니 결국 이렇게 가느냐며 군복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루지야에서 1년 반 동안의 정전감시단 근무를 마치고 2006년 9월 귀국한 박 중령은 곧바로 유엔 네팔임무단 파견 제의를 받았다.

늦은 나이에 왜 또 위험한 곳에 가려고 하느냐는 가족들의 만류로 박 중령은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유엔 측이 내전 감시 경험자를 요청하는 바람에 박 중령은 지난해 3월 네팔로 파견됐다.

당시 신 씨는 대한민국에 군인이 당신밖에 없느냐고 푸념했지만 국가의 부름에 따르기로 마음을 굳힌 남편을 붙잡을 수 없었다.

박 중령은 영어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국가안보가 왔다 갔다 한다며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뜻 깊은 일에 쓰고 싶다고 부인을 설득했다.

자신의 말처럼 박 중령은 지난해 12월 임무수행능력을 인정받아 유엔메달을 받았다.

1년의 파견 기간이 만료되는 18일 귀국을 위해 비행기표까지 끊어놓은 박 중령은 그러나 3일 오후(현지 시간) 뜻하지 않은 사고를 만나 생사 불명인 상태다.

6포병여단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휴가를 얻어 급히 집으로 달려온 아들 박은성(25) 상병은 군인이든 일반인이든 세계로 뻗어나가야 나라에도 보탬이 된다고 유학을 권하셨던 아버지가 이역만리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은성 씨는 박 중령이 미국 교육사령부 교환교관으로 부임하던 2001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2006년 대학을 졸업했다. 은성 씨는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받았지만 힘들게만 보이던 아버지의 생활을 직접 겪어보기 위해 지난해 1월 자원입대했다.

신 씨는 남편이 공수부대 출신이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1월에 네팔에서 남편과 함께 보낸 20일이 마지막 여행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신광영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