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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아 얼마나 무서웠니 화이트데이의 슬픈 교실

혜진아 얼마나 무서웠니 화이트데이의 슬픈 교실

Posted March. 15, 2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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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아, 제발 제발 좋은 곳으로 가.

묵념이 끝나자 신슬비(11) 양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4학년 때 단짝 친구였던 이혜진 양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표정이었다.

14일 오전 경기 안양시 명학초등학교 5학년 3반. 주인 잃은 혜진 양의 빈 책상 위에는 교사와 친구들이 가져온 흰 국화꽃이 보였다.

슬비 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실종된 혜진 양이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었다. 학교 측도 무사하기를 바라며 반을 배정했다.

하지만 혜진 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77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슬비 양은 어젯밤 뉴스를 보고 혜진이 얼굴이 생각나 밤새도록 울었어요. (혜진이가)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혜진 양의 5학년 담임인 송선주(46여) 씨도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지난달 전근 온 송 씨는 얼굴도 보지 못한 제자의 죽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노란 리본 30여 개를 손에 들고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말만 되뇌었다. 리본에는 예슬아, 혜진아 보고 싶다!라고 적혀 있었다.

새로 만든 거예요. 애들한테 달아주지도 못했는데.

송 씨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리본을 혜진 양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검은색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학교 측은 이날 임시 조회를 열었다.

혜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는데 처참하게 희생됐다는 통보를 받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윤형(61) 교장은 슬픔에 추도사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보는 이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 교장은 혜진이네는 가족을 잃었고 우리 학교는 혜진이를 잃었습니다라며 눈물을 떨궜다.

이날은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화이트데이. 사탕과 초콜릿, 아이들의 웃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6학년 1반 칠판에는 애도의 글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화이트데이로 기억되기보다 우리 명학 친구들에게 슬픔과 애도의 날입니다. 나보다 먼저 간 친구를 위해 마음으로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명학초등학교 등하굣길은 평소와 달랐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까지 바래다주는 부모가 부쩍 늘었다.

이날 혜진 양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 수원시 호매실동 야산을 찾은 40대 여성은 국화꽃과 옷가지, 케이크를 취재진에게 건넸다.

현장과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 여성은 혜진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가슴이 아파 찾아왔다. 혜진이가 따뜻하고 편안하게 쉬기를 바란다며 편지 한 통을 전했다.

아가야 너는 잘못이 없단다. 너를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뿐이다. (중략) 모든 것 잊고 이 옷과 신발 입고 신고 평화만 가득한 하늘나라로 가렴.



이성호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