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K(박세리)의 자리를 PARK(박인비)이 대신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은 박인비(20)의 US여자오픈골프대회 최연소 챔피언 등극을 이렇게 표현했다.
30일 미국 미네소타 주 에디나의 인터라켄CC에서 끝난 제63회 US여자오픈 최종 4라운드. 응원 나온 수백 명의 한국 교민은 박인비가 세계 강호를 제치고 짜릿한 역전 우승으로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하자 마치 자신의 일인 듯 기뻐하며 환호했다. 태극기를 손에 든 꼬마와 유모차를 끌고 온 열성 부모,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도 눈에 띄었다. 골프장 근처의 한 교포가 사는 집 창문에는 축하라고 한글로 적은 플래카드까지 내걸렸다.
대회가 열린 미네소타 주에는 한국 교민 1만여 명이 살고 있고 한국 입양아는 그 2배인 2만 명이 넘는다. 입양 문화가 발달한 북유럽계 이민자의 후손이 많고 인종에 대한 편견이 적어 한국 입양을 초창기부터 주도한 지역이어서 그렇다는 게 한 교민의 설명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낯선 땅에 왔지만 그들은 모국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향수에 젖는 일이 잦다. 하지만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갈등과 시위대와 경찰의 대립, 경기 침체 같은 우울한 소식 일색이라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이날도 미국 주요 방송 뉴스는 서울에서 벌어진 폭력 시위 장면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래서 교민들은 박인비의 이번 쾌거를 그 어느 때보다 반기며 외환위기에 빠져 있던 10년 전 이 대회에서 우승한 박세리를 떠올렸다. 당시 박세리는 맨발 투혼으로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해 교민들에게 용기를 심어 줬다. 한국 골퍼가 미네소타 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1999년 삼성월드챔피언십 때의 박세리가 마지막이었기에 교민들에게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0년 전 미국에 이민 온 남홍규(42) 씨는 한국의 시국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우리 어린 선수가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해 뿌듯하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교포 박천희(50) 씨 역시 촛불시위가 변질되는 것 같아 속이 상했고 국가 이미지도 상처를 입는 것 같았는데 모처럼 흐뭇하다며 웃었다.
박인비가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박세리 때문이었다.
그의 부모는 골프광이었다. 페트병 포장재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박건규(46) 씨는 언더파 스코어를 치는 수준이었고 어머니 김성자(45) 씨는 그를 가졌을 때 임신 8개월에도 라운드를 했다.
골프광 부모 슬하에서 자랐지만 박인비는 테니스 수영 검도 같은 운동은 즐기면서도 골프는 재미가 없다며 멀리했다. 그런 그가 경기 성남시 서현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98년 박세리의 우승 장면을 가족과 함께 밤을 새우며 지켜봤고 이틀 후 골프클럽을 잡았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전 과목 A를 받을 만큼 공부를 잘하면서도 미국 주니어대회에서 9승을 올리며 유망주로 주목받은 뒤 2006년 프로에 전향했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정규투어에 뛰어든 박인비는 시즌 초반 6차례나 예선 탈락했다. 하지만 14번째로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올라 자신감을 찾았다. 특히 그는 이번 우승으로 박세리가 갖고 있던 종전 대회 최연소 챔피언 기록(21세)도 갈아 치웠다.
이번 대회 내내 태극기 문양의 볼마커를 모자챙에 붙여 사용한 박인비는 박세리 프로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박 프로께 큰 영향을 받았다. 나뿐 아니라 내 또래가 다 그랬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세리 이후 10년이 흘러 박인비가 다시 암담한 국내 현실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