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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ARF 외교 소동

Posted July. 28, 2008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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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이의 제기로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의장성명이 수정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남한은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 선언에 기초한 남북 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강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내용에 반발했고, 북한은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구절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고심 끝에 포럼 폐막 다음 날 논란이 된 내용을 모두 빼고 의장성명을 다시 발표했다. 다자()회담의 성명이 이런 식으로 고쳐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ARF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27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안보협의체로서 주로 역내 평화와 안보 증진 방안을 논의한다. 우리는 1994년 출범 때부터, 북한은 2000년 2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ARF 연례회동의 결과물인 의장성명에 한반도와 관련해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는 남한과 북한에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싱가포르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어느 한쪽에 기울어졌다고 비난하기는 어렵지만, 민감한 사안을 잘 조율하지 못해 ARF에 오점을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외교부의 대응에도 허점이 많았다.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에 몰두하느라 북의 104 선언 카드를 막지 못한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 싱가포르가 의장성명을 수정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두고두고 북의 104 선언 이행 압력에 시달릴 뻔했다. 더구나 이번 소동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벌어져 더 당혹스럽다. 야당의 외교장관 퇴진 요구가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이다. 이번 소동으로 남북 사이는 더 벌어졌다. 남북대화 재개는 물론이고 금강산 사건 해결을 위한 접점 찾기도 어려워진 것 같아 안타깝다.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대결외교를 펼치면 양쪽에 모두 손해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이전 남북은 지지국 확보 경쟁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뼈저리게 했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남과 북은 국력을 낭비하는 악순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소모적 대결외교가 재연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