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일본 총리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주범 도조 히데키(사진)가 패전 직전 남긴 자필 메모가 발견됐다. 메모 내용은 전쟁 승리에 대한 미련, 패전 책임 떠넘기기, 침략전쟁의 미화 등 망상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은 도조가 1945년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연필로 작성한 30쪽 분량의 연필 메모를 도쿄()에 있는 국립공문서관에서 확인했다고 12일 보도했다.
도조의 메모는 일본 정부가 연합국의 무조건 항복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다음 날 열린 중신()회의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날 회의는 스즈키 간타로() 당시 총리가 도조 등 전직 총리 등을 모아놓고 자문하는 자리였다.
도조는 메모에서 굴욕화평 굴욕항복 새 폭탄에 기가 질리고 소련의 참전에 오금이 저려 등의 표현을 써 가며 무조건 항복 방침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도조는 일본이 항복하게 된 것은 국정 지도자와 국민이 기백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애당초 무모한 전쟁을 도발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도조는 당시 전황에 대해 (일본은) 아직 가진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았다며 일본에 승산이 있는 듯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당시는 오키나와()전 패전, 원자폭탄 투하, 소련군 참전으로 일본의 패전이 사실상 굳어진 상태였다는 것이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설명이다.
도조 히데키와 덴노(일왕의 일본식 명칭)의 시대를 쓴 다큐멘터리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 씨는 이 메모는 전쟁을 주도한 인물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잘 보여 준다면서 일본이 도조의 생각대로 전쟁을 계속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참화를 당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적의 법정에 서는 것과 같은 일은 일본인으로서 택할 수 없는 길이라며 자살을 암시했다. 1945년 9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도조는 도쿄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48년 12월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