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1950년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구상을 미국 워싱턴의 군 수뇌부에 올린 것은 7월 15일이었다. 수뇌부는 물론 맥아더의 휘하 장군들도 극력 반대했다. 인천은 모든 악조건을 갖고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맥아더는 5000분의 1의 확률을 가진 도박이지만 적에게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수뇌부는 자연조건이 더 좋은 군산이나 평택을 권유했으나 조건이 나쁜 인천을 택해 적의 허()를 찔렀다.
일본 도쿄의 유엔군사령부에서 D데이(9월 15일)를 기다리고 있던 맥아더는 부관을 워싱턴에 보내면서 크로마이트(Chromite) 작전 계획서를 하루 전날 수뇌부에 전하라고 명했다. 수뇌부가 작전을 연기시키거나 상륙 장소 변경을 요구할 것에 대비한 것이다. 부관이 미 국방부에 나타나 작전 계획서를 내놓았을 때 이미 인천 월미도에선 함포사격으로 북한 공산군의 새벽 단잠을 깨워놓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대한민국을 공산화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건졌다.
인천상륙작전에서 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숨은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제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해 훨씬 적은 사상자와 짧은 시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달 여에 걸친 우리 해군의 사전 작전 덕분이었다. 8월 16일부터 금강산함의 지휘 하에 함정 8척과 장병 110명으로 구성된 부대가 인천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영흥도 덕적도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두 섬의 북한군 병력의 무기와 방어태세를 상세히 파악해 인천상륙작전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기념 축제가 어제부터 월미도와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우리 해군의 최대(길이 200m, 폭 32m, 1만5000t급) 함정인 독도함이 상륙작전 재현() 행사에 상륙함으로 참여한다. 다음달 5일부터는 부산에서 국가원수의 해상사열 의식인 관함식()이 10년 만에 열린다. 최신예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도 참여한다. 우리 해군이 위용을 과시하며 58년 전 그날의 감격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국제행사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