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8월 키코로 인한 손해를 갚는 데 약 30억 원을 사용했습니다. 이달 말 만기인 대출금 80억 원은 연장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은행이 연장해 줄지 의문입니다. 15년간 적자 한 번 내지 않은 탄탄한 수출 기업이었는데. (충청지역 전자부품 전문 A사의 재무담당 임원)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국내 대기업에 납품합니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950원일 때 국내 대기업과 계약했는데 지금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로 뛰어 부품을 수입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부산의 자동차 부품전문 B사의 재무담당 임원)
올해 상반기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위기를 겪었던 중소기업들이 최근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수출 기업은 환 헤지를 목적으로 가입한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에서 대규모 피해를 봤고, 수입 기업은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입었기 때문이다. 자금사정 악화로 부도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키코에 가입한 건전한 중소기업들이 하루아침에 흑자 도산을 맞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으로 집단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A사의 임원은 올해는 어떻게든 견디겠지만 내년 상반기(16월)가 두렵다며 키코 피해로 올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내년에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자금을 회수하면 끔찍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석현 환 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키코가 보약인 줄 알고 먹었는데 알고 보니 독약이었다며 키코 문제를 더 방치하면 상당히 많은 우량 중소기업이 곧바로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가 이달 중순 키코 가입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102개사를 조사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일 때 70개 업체(68.6%)가 부도 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채상환계수(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부채로 나눈 수치)를 기준으로 구했는데, 계수가 1보다 작으면 부채를 갚지 못해 부도 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키코 피해와 환차손을 입은 상태에서 국내 시중은행이 대출을 줄이자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호소하고 있다.
중기중앙회가 23, 24일 이틀 동안 중소기업 154개사에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중소기업 경영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126개사(81.8%)가 영향이 매우 크거나 크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영향(복수 응답)에 대해서 은행 자금 조달(63.4%)과 내수 감소(62.6%), 판매대금 회수 지연(60.2%)이 대부분이었다. 중소기업의 68.8%는 현재 자금난이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의 금융 안정을 위해 은행권은 중소기업의 대출 회수를 자제하고 정책자금의 만기 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키코 상품을 중도 해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키코로 인한 손실금을 무담보 장기대출로 전환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은행권은 26일 은행 중소기업 워크아웃 담당자들이 만나 키코로 손해를 본 기업을 위한 지원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