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서 유학 중이던 Y 씨는 2002년 12월 대선 전날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노사모 회원이었던 그는 서울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노 후보의 당선은 Y 씨 같은 열성 지지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대선이나 총선 때부터는 재외국민이 Y 씨처럼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투표하러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재외국민이 현지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선거법 개정 작업은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6월 재외국민과 선원들의 투표권을 제한한 선거법에 대해 헌법불일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재외국민의 투표권 인정 문제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정치인들은 해외에서 교민단체 대표들을 만나면 재외국민도 투표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다. 하지만 선거 때 어떤 후보에게 유리할지를 예상하기 어려워 어느 정당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선관위는 외국 시민권자를 제외한 재외국민 300만 명 중 투표할 사람을 134만 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1, 2위 후보의 표차가 1997년 대선 때 약 39만 표, 2002년에는 약 57만 표였으니 134만 명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선거법 개정에 대해 과거에는 민주당이 적극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한나라당이 더 적극적이다. 지난해 선거법에 대한 위헌 제청 과정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깊이 관여한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재외국민이 보수 성향이 강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재외국민 가운데 호남 출신이 많아 2012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가 불리할 것이라는 걱정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재외국민이 투표권을 갖게 되면 정당과 정치인들은 해외동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동안 교민들의 숙원인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 재외국민위원회나 교민청이 생기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미국 일본 등 교민이 많은 나라의 동포 중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선거 관리의 어려움과 한국정치에 대한 관심이 과열돼 교민사회가 분열될 것이라는 우려도 해소해야 할 과제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