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기준금리를 시장의 예상보다 큰 폭으로 0.75%포인트 인하하고 은행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5조10조원의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9일 0.25%포인트 인하 후 18일 만에 금리를 큰 폭 내린 것은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깊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 금리인하가 미흡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은행채 매입은 은행의 자금사정을 개선해 주택대출금리를 낮추기 위한 것이다. 은행과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은이 검토에 들어간 지 일주일 만에 발표된 대책이다. 모처럼 적극적인 대응으로 주가 폭락이 일단 멈추고 주택대출금리가 하락한 것은 다행이다. 대응이 더 빨랐더라면 시장 충격이나 정책 비용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책은 신속한 결정과 실효적() 현장집행이 열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7일 대출을 꺼리는 은행을 경유하지 않고 기업어음(CP)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의 자금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FRB는 1929년 대공황 때 의회로부터 비정상적이고 절박한 상황 판단을 전제로 누구에게나 자금을 제공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FRB는 비금융기관에 두 차례 소액신용대출을 해준 1940년대 이후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이 권한을 발동했다. 지금이 그만큼 절박한 시점이라는 판단에 따라 중앙은행의 전통과 체면을 따지지 않고 신속하고도 선제적인 대응을 한 것이다.
한은은 평상시 정책수단(기준금리 인하)에 매달리지 말고 정책목표(주택대출금리 인하유도) 달성을 위해 현장에서 빠르게 뛰었어야 했다. 정부도 통화옵션상품인 키코 피해 중소기업 대책이나 외환시장 투기적 거래 대책에서 타이밍을 놓치거나 땜질 처방에 그친 사례가 많다. 실물경기 대책에서 이런 실수가 되풀이된다면 치명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시장이 불안에서 벗어날 때까지 선제적이고 충분하며 확실하게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대로 시장대책이 집행돼야만 국민이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섣부른 낙관론을 펴거나 말만 앞세우다 보면 수뇌부가 신뢰를 잃고 시장 불안이 커지게 된다. 해외에서 국내 상황을 오해한다면 일단 발로 뛰어 해명하고 하루라도 빨리 경상수지를 흑자로 돌려놓음으로써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망령을 쫓아내는 수밖에 없다.
위기국면에선 시장여건도 비정상적이 되고, 정책의 전달경로나 효과도 달라진다. 공허한 이론보다는 현장에 들어맞는 대책이라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