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 요즘 같은 세계적 불황 때도 잘 팔리는 제품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은 최근 작성한 불황기에 나타나는 소비패턴 변화라는 보고서에서 이들 불황 속 호황 제품이나 서비스는 경기 침체기의 복잡한 소비자 심리를 꿰뚫은 상품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소개했다.
고급 시계, 립스틱, 전화기 같은 작은 명품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싼값에 명품 기분을 유지하고 싶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갤러리아클락의 50만60만 원대의 고급 시계 아이그너 워치는 밸런타인데이, 입학 졸업 입사철을 맞아 꾸준한 매출 성장률을 보이는 대표적 제품이다. 휴대전화 등 각종 정보기술(IT) 기기를 시계 대용으로 사용하는 젊은 소비자가 늘고 있는 추세에서 아이그너 워치의 호황은 관련 업계에서 독특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패션 전문 홍보대행사인 다우의 김수경 대표는 명품 가방이나 명품 정장 등 비싼 패션 아이템을 구매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눈에는 쉽게 띄면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계로 명품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비싼 기능성 화장품의 매출은 감소하는 대신 고급 립스틱의 판매는 오히려 증가하고, 고급 의류보다 관련 액세서리에 대한 기호가 느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덴마크의 명품 홈엔터테인먼트 브랜드 뱅앤올룹슨(B&O)의 신제품 무선전화기 베오컴2가 현재 대기고객 수요가 2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뱅앤올룹슨 브랜드매니저인 오용현 팀장은 수천만 원대인 스피커나 TV에 비해 베오컴2는 179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명품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임대 판매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덜 쓰면서도 지금의 생활수준은 유지하고 싶은 불황기의 소비자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명품 대여업체인 ORB는 지난해 12월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배나 늘었다. 닛산자동차의 신제품 스포츠카는 하루 임대료가 3만5000엔(약 54만9500원)에 이르지만 주말 이용자는 추첨을 해야 할 정도로 성황이다.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등을 렌털 서비스 하는 웅진코웨이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1901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7.9%나 증가했다.
웅진코웨이 내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던 1998년 렌털 서비스를 처음 시작해 정수기 시장을 개척했는데 최근 불황 속에서 제2의 도약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불황은 사은품조차도 현금, 생활필수품 같은 실속형으로 바꿔 놓았다.
LG전자는 최근 에어컨 예약 판매를 하면서 일정 모델을 구입한 고객을 상대로 100명을 추첨해 현금 100만 원씩을 지급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LG전자 측은 경기 한파()를 고려해 소비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경품을 내걸었는데 호응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일부 홈쇼핑 업체들이 구매 고객에게 라면 1상자를 주는 경품 행사를 벌여 기대 이상의 큰 흥행 효과를 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불황 속에서도 기존 충성 고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상품력을 유지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해 매출이 상승한 업체들도 있다. 여성 의류 브랜드인 에스쏠레지아는 중간 가격대의 여성복 시장을 겨냥해온 전략을 고수하며 저가()의 기획 상품전 같은 행사를 하지 않으면서도 1월 매출을 20% 초과 달성했다. 다른 회사들이 직원들의 월급을 삭감하는 요즘 이 회사는 인센티브를 지급할 정도이다.
캐릭터 여성복 전문 브랜드인 제시뉴욕도 차별화된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이란 기존 특징을 그대로 살리며 꾸준한 매출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전희준 대표는 지난해 35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는데 올해는 그보다 70억 원 늘어난 42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