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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질 잡고 돈 더 내라는 북한, 납치범과 뭐가 다른가

[사설] 인질 잡고 돈 더 내라는 북한, 납치범과 뭐가 다른가

Posted April. 23, 200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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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그제 우리 정부 대표단에 개성공단의 근로자 임금 월 7075달러를 인상하고, 2014년까지 10년간 유예된 토지사용료를 2010년부터 앞당겨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50년간 사용하기로 합의한 토지임대차 계약도 다시 체결하자고 억지를 부렸다. 말이 재협상 요구이지 사실상 일방적 통보였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식 참여를 선전포고라고 재차 주장하면서 엉뚱하게 개성공단 운영과 연관시켰다. 25일째로 접어든 현대아산 직원 억류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 대표단은 아침 일찍 개성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당국자 간 회담 형식을 갖춰보려고 애썼으나 북이 뻗대는 바람에 11시간이나 기다리다 고작 22분 만에 만남을 끝내는 수모를 당했다. 정작 회담장과 같은 건물에 있던 현대아산 억류 직원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대화의 모멘텀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썼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재협상 제안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대로 경색된 상황에서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북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북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취해온 일련의 조치나 이번 요구를 보면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활용해온 개성공단의 용도가 다했다는 판단에서 고사작전에 들어간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남측이 무리를 해서라도 개성공단을 계속 꾸려가든지, 아니면 알아서 스스로 문을 닫으라는 협박같다. 북이 일방적으로 폐쇄할 경우 져야 하는 법적 책임과 보상 문제, 비난을 의식해 남측에 그런 위험 부담을 떠넘기려는 술책일 수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남북 화해의 상징이니, 경제 교류의 교두보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든 개성공단이 지금에 와서는 북의 볼모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는 남북관계와 경제적 측면에서 개성공단의 효용성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북에 여차하면 개성공단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줄 필요도 있다.

북은 억류 직원을 실질적인 인질로 잡고 돈을 더 달라고 흥정을 벌이는 것은 납치범의 소행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저자세로 끌려 다니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직원이 북에 억류된 상태에서는 개성공단 재협상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북에 분명히 주지시켜야 한다. 정부는 PSI 정식 참여가 북과 무관하다고 해놓고도 대북 변수에 따라 3차례나 연기하는 자승자박의 실책을 저질렀다. 개성공단과 관련해서도 이 같이 무력한 눈치 보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