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5일 오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급변하는 세계 속의 한국과 미래를 주제로 7일 특강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또 정보기술(IT) 분야 벤처기업이 밀집한 실리콘밸리를 둘러보고 현지 기업인, 교포들과의 간담회도 가진 뒤 11일 귀국한다.
이번 방미()에는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의원 8명이 함께한다. 박 전 대표의 외국 방문에 이처럼 많은 의원을 동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특사 자격으로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를 제외하면 외국 방문길에 측근을 대동하지 않았다. 지난해 총선 직후인 5월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는 의원과 취재진의 동행을 사절하고 나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개인 일정으로 미국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측근 의원들이 나서 수행 신청을 받았다. 언론사 취재를 부담스러워한 지난해 호주 방문 때와 달리 이번에는 언론사에 동행 취재를 적극 요청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동행을 희망한 꽤 많은 의원 중 8명을 선정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과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정현 의원, 이공계 출신인 서상기 의원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박 전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의원들이다. 또 유정복(경기 김포) 이학재(인천 서강화갑) 유재중(부산 수영) 서상기(대구 북을) 안홍준(경남 마산) 이진복(부산 동래) 이계진(강원 원주) 이정현(호남 출신 비례대표) 의원 등 출신 지역을 골고루 분배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현지에서 별도 일정 없이 박 전 대표와 7일 동안 함께 다닌다. 의원들은 스스로를 동행단이 아니라 수행단으로 부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금 아무런 직책이 없는데도 그와 같이 가는 의원들이 수행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박 전 대표의 위상이 어떤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계파 수장() 이미지를 경계해왔다. 당내에 60명가량 되는 친박 의원이 있지만 박 전 대표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캠프에 참여한 의원을 제외하고는 개별적으로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가까운 인사들의 모임에마저도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측근은 박 전 대표가 너무 (측근들을) 관리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더욱이 박 전 대표가 개별 의원과의 접촉을 멀리하면서 일부 중립지대 초선 의원들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친박 진영에 퍼지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의원 수행단 구성을 놓고 박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친박 의원과 접촉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그동안 정중동 행보를 하며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던 박 전 대표의 측근 챙기기 스타일에 변화가 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이번 방문에는 그동안 외국이나 지역 방문에 함께하지 못한 의원이 많이 포함됐다며 국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이어서 함께 가는 것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