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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만 본다구요? 메시지도 읽으세요

Posted June. 03, 200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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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지난달 31일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크라운플라자 인비테이셔널 3라운드. 필드 안팎은 온통 분홍색 물결이었다. 비제이 싱 등 주요 선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핑크 티셔츠 차림이었다.

#장면 2=지난달 29일 경기 용인시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힐스테이트 서울경제오픈에 출전한 선수들의 의상은 평소 입던 화려한 원색 대신 검은색 계통의 무채색이 많았다.

지난 주말 한미 주요 골프대회에서는 이색 장면이 연출돼 눈길을 끌었다. PGA투어에서는 핑크 아웃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지난해 대회 챔피언 필 미켈슨의 부인 에이미 씨를 격려하기 위한 이벤트다.

KLPGA투어 선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대열에 동참했다. 윤채영(LIG)은 귀걸이도 검은색으로 하고 나왔다. 김보경(던롭스릭슨)은 바지와 티셔츠에 모자까지 온통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골랐다.

배경은 달랐지만 한국과 미국의 프로골퍼들은 모두 어떤 목적을 위해 일치된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이처럼 스포츠 현장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선수들의 다양한 집단 퍼포먼스가 주목받으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야구대표팀의 봉중근과 이진영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해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아 국내 팬들에게 통쾌함을 전해 줬다. 3년 전 1회 WBC 때의 태극기 세리머니를 재현한 것이다. 2007년 중국 창춘 동계아시아경기에서 한국 쇼트트랙 여자대표 선수들은 시상식에서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깜짝 카드섹션을 펼쳐 자칫 한중 외교 문제로 비화될 뻔한 적도 있다.

축구의 골 세리머니도 퍼포먼스로 눈길을 끈다. 이근호(주빌로 이와타)는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예선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뒤 허정무 감독에게 다가가 아이를 어르는 제스처를 취했다. 쌍둥이 외손자를 얻은 허 감독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로 주장 박지성이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축구 대표팀이 중동에서 열린 평가전 도중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광고판 앞에서 단체로 골 뒤풀이를 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대한축구협회 이원재 홍보부장은 예전에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자제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선수들이 알아서 잘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의 본질은 흔히 정직성과 순수성에 있다고 한다. 그래도 과거에는 정치권력이 스포츠를 정권 홍보나 유지 목적으로 활용하면서 선수들은 꼭두각시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포츠가 정치, 종교 등의 이유로 훼손돼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자유로운 개성을 표현하거나 사회적인 이슈를 반영하는 경우가 늘었다.

제일기획에서 스포츠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박찬혁 박사는 한때 독자 노선을 걷던 스포츠가 이젠 정치 경제 사회와 융합하고 있다며 선수들이 경기 외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도 팬들이나 스폰서 기업의 관심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