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운 임직원들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는 그동안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벌여 이 회사 임직원들이 회삿돈을 빼돌린 증거를 상당부분 확보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검찰은 해운업체 동양고속페리가 노무현 정부 시절 강무현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건넨 뇌물의 일부가 대한통운에서 조성된 비자금에서 나왔다는 단서를 토대로 대한통운과 하청업체 관계자 등에 대한 금융거래 명세를 추적해 이를 확인했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검찰에 구속됐었다.
검찰은 항만터미널을 운영하는 대한통운이 해운회사의 수입화물을 자사가 운영하는 항만터미널에서 계속 하역하도록 하기 위해 비자금을 만들어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전날 대한통운 부산 및 경남 마산지사에서 압수한 40여 상자 분량의 회계자료 등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 검찰은 대한통운 일부 임직원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산인프라코어의 해군 고속정 엔진 납품단가 과다계상 의혹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수부(부장 이경훈)는 납품 단가를 부풀려 조성된 8억여 원 가운데 일부가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 군 관계자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를 퇴직한 직원들은 고속정 엔진납품 당시 군 고위관계자가 인천공장을 수시로 방문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 23일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서거한 이후 4개월 가까이 수사 공백기를 겪은 검찰이 우량 대기업을 상대로 동시다발 수사에 나서자 검찰 안팎에서는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내사가 많이 진척된 기업의 비자금 관련 사안부터 본격 수사에 나섰을 뿐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기업 비리와 관련한 첩보가 많이 축적돼 있지만, 막상 수사를 풀어가기는 쉽지 않다며 일단 횡령과 비자금 조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계열사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두산그룹은 23일 그룹 차원의 비리가 아니다며 선을 그으면서도 검찰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대한통운의 각 지사는 사실상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번 사안도 대한통운 본사와 관련이 없는 임직원 개인의 비리라고 강조했다. 두산그룹도 내부감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철저히 규명하고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두 그룹이 즉각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최고경영진이나 사주가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이 대통령이 토착비리 척결 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검찰이 보여주기식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있다면서도 다른 기업으로 불똥이 튀지 않을까 경계하는 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