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러시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의거 이전부터 일제 수뇌부는 재러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재판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18일 제기됐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신운용 연구원이 일본 외교사료관에서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해 9월 한국사연구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07년 러시아 하얼빈에서 조선인 김재동 등이 일본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일본 외상인 고무라 주타로()는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에게 조선인들의 신병을 인도 받으라는 훈령을 내렸고, 일본은 러시아에서 이들을 넘겨받아 직접 재판해 사형 등을 선고했다.
이후 일본은 재외 조선인 범죄의 재판권 행사 문제를 논의하는데 훗날 안 의사에게 저격당하는 이토 히로부미가 1908년 하야시 다다스(동) 외상에게 보낸 전문에서 재외 한인 재판사무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한다고 밝혔다는 것. 이는 재러 조선인이 저지른 사건을 일본이 직접 재판하는 게 부당하다고 이토 히로부미가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신 연구원은 당시 국제법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러시아에서 재판을 주관해야 했고 신병을 일본에 인도하려면 한국과 협의를 거쳐야 했지만 사료에서 나타나듯 일본은 그 부당성을 알면서도 편의상의 이유로 재외 조선인에 대한 재판권을 불법적으로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일본 당국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김재동 사건 등을 선례로 들어 안 의사의 재판권을 러시아에서 가져와 사형을 선고했다.